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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책

펀 홈 / 앨리슨 벡델

by 0l목 2024. 11. 3.

 

 

 
펀 홈: 가족 희비극
“퀴어 가족”, ‘벡델 테스트’의 그 벡델 이야기 전미비평가상 최고작, 뉴욕타임즈 선정 최고의 문제작 토니상 5개 부문 석권 브로드웨이 뮤지컬 〈펀 홈 fun home〉 원작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 내 퀴어 정체성의 계보를 추적한 『펀 홈(FUN HOME)』은 벡델 테스트를 만든 작가 앨리슨 벡델의 베스트셀러 그래픽노블입니다.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인 앨리슨은 고향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시골 마을 비치 크리크에서 장례식장(FUNERAL HOME)의 장의사이자 영문학 교사로 일하다 돌연 죽음을 맞은 아버지 브루스 벡델의 수상한 죽음을 역추적해 갑니다. 정상 가족의 강박 속에서 평생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산 아버지 브루스 벡델. 그의 비밀스런 동성애와 저자 자신의 당찬 퀴어 성장담 사이의 교차점을 회고하며 한없이 고독하지만 특별했던 가족 이야기를 절제된 관찰과 묘사로 훌륭하게 복원해냈지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일상적 사건과 가족 간 갈등, 성장과 독립의 과정 안에 삶과 죽음,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 고전 문학, 정치, 역사, 하위문화 요소를 씨실 날실로 촘촘하게 엮어내며 현시대에 인간성의 복원과 휴머니즘, 관용의 가치를 전합니다. 이를 원작으로 삼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펀 홈'이 최고의 뮤지컬에게 수여되는 토니상 5관왕을 석권하면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공연으로 전 세계에 상연되며 원작을 더욱더 빛내고 있습니다. “중쇄의 참맛!” 레트로 마니아를 위한 페이퍼백 〈펀 홈〉, 스웨덴 친환경 종이와 중질 만화지로 무게와 책값은 40% 낮추되 가독성은 그대로. 2017년 상반기 텀블벅 그래픽노블 분야 크라우드 펀딩 1위를 기록했던 화제작 〈펀 홈〉. 한겨레, 경향, 시사인이 주목한 퀴어 문학/그래픽노블 펀 홈이 가볍고 저렴한 페이퍼백으로 출시된다는 소식이 SNS과 입소문을 통해 전해지면서 일반 후원자와 동네책방을 포함해 다시 500여 권의 책이 한 달 만에 선(先) 주문되었습니다. 펀 홈 페이퍼백의 북 디자인 역시 그래픽 아티스트 이기준 작가가 맡아 종이 만화책이 가진 레트로한 멋을 살려 주었어요. 표지는 스웨덴 감성의 친환경 종이인 문캔 폴라, 내지는 중질 만화지로 세련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감촉과 냄새에 빈티지한 매력을 더했습니다. 또한 큼직한 판형을 유지해 본문 가독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자
앨리슨 벡델
출판
움직씨
출판일
2018.10.16

 

 

 

★★★★

 

"하지만 입장이 묘하게 뒤바뀌고 더러는 얽히고설킨 우리의 이야기 안에서

아버지는 내가 뛰어들 때 날 잡아 주려고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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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스포

 

 

   아버지의 작고 후에야 거꾸로 책을 넘겨가듯 그를 여정한 작가의 회고록. 읽는 내내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작가의 심리상태가 느껴져 반가웠다.

 

   작가 본인은 그의 죽음을 보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신경 쓰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 기묘하게 공존했던 작품들과 대화와 일상과 사건에 대한 모든 반추가 애정의 단면이고 깊은 추모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나기 마련이니까(죽은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산 사람이 위로받는 행위에 가깝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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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스포

 

- 아버지에게 어떤 평도 할 수 없다면 애정 표현은 한층 위험한 모험일 터.

 

- 고향 지도를 펼쳐놓고 반경 1.2km 원을 그리면 아래 네 가지가 모두 들어간다.

(A) 아버지의 무덤

(B) 아버지가 죽은 150번 도로, 아버지가 손보던 낡은 농가 근처

(C)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릴 낳고 키운 집

(D) 아버지가 태어난 농장

이 협소한 범위는 아버지의 편협한 면을 보여준다. 이는 오해의 소지도 있겠지만 정확한 표현이다.

 

- 장례식장(Funeral Home)은 큰 길가에 있었다. 우리끼린 줄여서 '펀 홈(Fun Home)'이라고 불렀다

 

- 염하는 사람이 죽으면 누가 염을 해 준단 말인가?

 

- 우리 부모님은 마치 본인들 결혼을 부끄러워하는 듯 보였다. 하나 예를 들자면 그 흔한 첫 만남 일화조차 없었다.

 

- 시는 예수의 수난에 대한 것이었다. ···융단 위 앵무새의 푸른 자유가 고대의 희생을 기리는 성스럽고 고요한 시간을 헤친다(하늘에 맹세하건대, 서재에 정말로 앵무새 그림이 있었음.).

 

    벡델 테스트의 그 벡델 이야기라는 문구만 보고 홀린 듯 읽는 중. 건조한 가족들 간의 관계가 사실 우리 가족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게 읽힌다.

 

+)

- 아버지는 라일락을 가장 좋아했다. 늘 절정을 맞기도 전에 시들기 시작하는 비극적인 꽃을 말이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원죄를 저지르고 타락한 사람인 양 비애에 잠겼다. 일종의 통과의례를 제대로 치러 내지 못한 기분이었다. 삶의 가능성이 더는 무한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버지도 그때 나처럼 큰 뱀을 본 걸까?

 

- 어찌 보면 아버지의 끝은 내 시작이라 할 수도 있다. 더 정확히 쓰자면 아버지가 버텨 온 거짓의 끝이 내 진실의 시작이라고 해야겠다.

 

- 이 겹쳐 녹음된 테이프에는 부모님 각자가 원하는 바 일에 몰두한 증거가 남았다. ...밀어줘도 된다는군. / 따, 딸깍...  / 문설주가 있고 판유리 여섯 장으로...

 

- 강박 행동이 묘사된 부분은 내 증상과 비슷했다. (...) 정말 너무 똑같아서, 책에서 보고 배운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6세에서 11세까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관념에 사로잡히는 것을 정신의학에서는 강박증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울타리의 세 번째 말뚝마다 만지기, 숫자를 어떻게든 짝수로 맞추기, 문을 지날 때마다 특정한 말을 하기 등이 있습니다. 중간에 실수를 했다고 생각되면, 실수하지 않았다고 믿는 구간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

   따지고 보니 생각보다 더 서로에게 무정했던 가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엔 내가 아는 가족의 모습을 묘사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어떤 재미를 느낀다. 이 재미란 거북한 동시에 반갑고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동시에 짜릿하기도 한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함에 가깝다(아마 이를 카타르시스라고 부르지 않을까). 특히나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말인 즉 내가 함부로 '재밌다'라고 여겨선 안될 누군가의 진짜 삶이란 얘기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감정이 바로 어쩌면 보편적인 사람들이 느끼는, 일반적이라 판단되는 범주의 애정과 감사의 표현에서 느끼는 반가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각설하자면, 이 책은 어떤 면에서 상당히 반갑다는 뜻이다.

 

 

+)

   - 당시에 막 토니상을 휩쓸었던 뮤지컬 <코러스 라인> 표도 운 좋게 구했다. 어느 날 난 거울 속의 나를 보고 말했지. "열네 살에 호모라. 너 대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래?" 특별히 내 성 지향성을 의식하며 관람하진 않았다. 아버지의 성 지향성은 더 생각 못했고. ...내가 동성애자란 걸 깨달은 건 그때가 아마 처음이었을 거야. 난 너무 우울해졌어. 게이는 평생 부랑아처럼 살아야 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하지만 공연에 빠져들면서, 나 역시 그들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이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마치 초록색 주방 세제가 손톱 밑 얇은 피부를 적시는 것처럼. 나는 영영 좋은 옷을 못 입겠네!

 

- 내가 지나치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다. 현실의 슬픔을 상상 속 트라우마로 대신하려고 말이다.

 

- 어릴 적 내게 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린 악당 같은 인물이었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낮 동안 어머니와 크리스천과 나, 셋이서 평화롭게 지내던 왕국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 아버지는 어린애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 머리가 굵어지자 지적 동반자가 될 잠재력을 나에게서 알아봤던 모양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언제 읽을래? 수년 간 방치당한 탓에 반대로 내가 아버지를 경계했다. 아버지 양로원에 보내드리고 나서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통과의례'라 불리던 아버지의 영어 수업을 듣게 됐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읽으라는 책들이 내게 흥미로웠다. 안톨리니가 누굴까? 피터스? / 모르겠는데요. / 홀든의 옛날 영어 선생님이요. / 홀든은 안톨리니를 어떻게 생각하지? / 좋아하죠. 선생님 집에 묵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니까요. (...) 가끔은 교실에 아버지와 나, 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기했다. 아버지한테 친밀감을 느끼다니. 아버지도 나도 관심에 굶주려 있었지 않았나 싶다.

 

- 불현듯 애정이 솟아올라 아버지가 듣고 싶을 만한 말을 골랐다.

 

- 가장 단순한 상호간 형식으로 요약했을 때, 블룸에 대한 스티븐의 생각에 대한 블룸의 생각과, 스티븐에 대한 블룸의 생각에 대한 스티븐의 생각에 대한 블룸의 생각은 어떠했나? 그는 그가 그를 유태인이라고 여긴다고 여긴 반면 그가 유태인이 아니라는 걸 그가 안다는 걸 그도 안다는 걸 그도 알았다.

 

- 가장 단순한 상호간 형식으로 요약했을 때,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과 나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은 어땠을까? (...)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퀴어라고 여긴다고 여겼다. 반면 나 역시 퀴어란 걸 아버지가 안다는 걸 내가 안다는 걸 아버지도 알았다.

 

   표지 부분을 읽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렬한 장면이었구나 싶다.

 

- 조이스의 장황하고 생의 욕망으로 충만한 '긍정(yes)'의 글을 그리 열렬히 흠모했으면서, 어떻게 정작 본인의 삶은 부정(no)' 할 수 있었을까? (배경의 삽화엔 생의 욕망을 무한정으로 긍정하듯 나열하는 단어와 문장 사이에 'yes'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율리시스」의 페이지가 일부가 발췌된 듯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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