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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책

궤도 / 서맨사 하비

by 0l목 2026. 1. 9.

 

 

 

 

출처 : 알라딘

 

 

 

★★★

 

 

 

지구는 작지 않지만 거의 끝없이 이어진다.

유려히 흐르는 운문들의 서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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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스포

 

 

 

   보통은 찜 목록에 있는 책들 중 시기상 땡기는 책들을 골라 읽는데, 이번에는 분명하게 요즘 유행하는 책을 읽고 싶다는 목적을 갖고 선택해 봤다. 기대한 것과는 다른 소설이라 사실 조금 아쉽지만, 그럼에도 궤도를 떠도는 우주비행과 닮아있는 지구의 모습을 인간이라는 작은 단위부터 대륙과 바다, 나아가 인류에까지 비견될 만한 큰 단위로 목격한 것 같은 기분은 꽤 좋았다. 마치 정말 내가 우주인이 되어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었달까.

 

 

 

 

- 외계 문명이 본다면 아마도 의아할 것이다. 저것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디로 가지도 않고, 왜 맴돌기만 하는 거야? 모든 질문의 답은 지구다.

 

- 하지만 새로운 생각이란 없다. 그저 새로운 순간에 태어난 오래된 생각일 뿐이다.

 

- 남은 평생 궤도에만 머무를 수 있다면 모든 건 무사할 것이다. 엄마는 치에가 지구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죽은 게 아니다.

 

- 어쨌거나 우주비행사는 도관導管일 뿐이다. 무엇 하나 붙잡지 않고 흘려보내는 기질 덕에 선별된 것 아닌가. 

 

- 🔖궤도 4. 하행 중 : 우주비행사와 어부, 두 세계의 충돌.

 

- 콜린스가 촬영한 사진 속 달 착륙선에는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타 있다. 착륙선 바로 뒤에 달이 있고 25만 마일 위에는 푸른 반구 모양의 지구가 인류를 품고서 깜깜한 암흑 속에 떠 있다. 사진에서 빠진 인간은 마이클 콜린스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 안톤은 그런 주장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사진에서 가장 강력하며 확실히 추론할 수 있는 생명의 증거는 사진을 찍은 사람이다.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눈,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의 온기. 그런 의미에서 콜린스의 사진이 더욱 매혹적인 이유는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 그 안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인간이 바로 콜린스이기 때문이다. 

 

- 넬은 끝없는 어둠이 맹렬하게 깔린 양쪽 창문을 가리킨다. 태양계들과 은하계들이 마구 흩어진 세계. 시공간의 왜곡이 거의 눈에 보일 정도로 시야가 깊고 다차원적인 세계. 이것 봐, 어떤 아름다운 힘이 아무런 의도 없이 내던져 놓은 게 아니면 이런 게 어떻게 만들어지는데? 숀도 끝없는 어둠이 맹렬하게 깔린 양쪽 창문을 가리킨다. 태양계들과 은하계들이 마구 흩어진 바로 그 세계, 시공간이 왜곡된 바로 그 깊고 다차원적인 시야를.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힘이 충만한 의도를 가지고 내던진 게 아니면 이런 게 만들어질까? 👈 정확히 친구랑 이런 식의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무교인 나와 기독교인 친구가 우주나 과학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지금의 생명체가 존재하게 된 엄청난 우연에 내가 감탄하자 친구가 '그런 이유로 그 우연에 의도가 느껴진다'고 얘기했더랬다. 

 

- 그러다 아빠랑 삼촌이랑 최초의 달 착륙 영상을 본 그날, 아빠 얼굴에서 그걸 본 거야. 갈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 아빠와 삼촌 둘 다 영상을 보면서 인생의 공허함과 충만함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지. 그게 싫었어. 생각하면 짜증이 치밀어. 아빠 얼굴에서 본 허기와 결핍을 생각하면.

 

- 인간의 오만함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그에 필적할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뿐이다.

 

- 끌어당기고 끌리고 잡아당기고, 같은 표현은 이런 움직임의 힘을 표현해주지만 우아함은 표현 못 한다. 이를테면 동시성/유동성/조화를 포착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딱히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지구의 날씨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다. 지구가 기류이고 기류가 곧 지구다. 얼굴과 표정을 분리할 수 없듯이.

 

- 그러니 딸, 꼭 기억하렴. 너는 열등하지 않아. 그걸 굳게 명심하고서 존엄한 존재로 보잘것없는 삶을 살아가렴. 엄마를 위해 그렇게 해 주겠니?

 

- 이 사람들은 달에 가 있고. 그러니까 너는 승자의 편에 있는 거야. 네가 이기고 있는 거라고. 👈 진짜 미안한데 이 부분, 패전국 일본인의 발악이라고 느낌. 뉘앙스는 알겠는데요. +) 덧붙여 최근 서구권에는 일본에 떨어뜨렸던 원자폭탄과 그로 인해 발생했던 인명 피해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도 그런 맥락에서 읽혔고, 전쟁이 결국 일반인들을 폭력과 죽음에 휩쓸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반드시 반성해야 할 지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해한다. 그러나 서양인들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 덕에 독립한 식민지 국가 출신이라는 정체성이 도드라져선 과연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였어도 반성했을까? 싶은 날서고 부정적인 태도가 튀어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어진다.  

 

- 이건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라 다급한 요구다. 우리 삶이 달린 유일한 세상을 탄압하고 파괴하고 약탈하고 낭비하는 짓을 멈출 순 없을까? 그러나 이들도 뉴스를 보고, 이미 세상을 살아 봤다. 희망을 품는다고 순진해지진 않는다. 그러면 뭘 하지? 어떤 실천을 해야 하지? 말해 봤자 소용 있을까? 이들은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자들이다. 그건 축복인 동시에 저주다.

 

- 🔖궤도 7 : 그러다 어느 날 변화가 찾아온다.

 

- 떠날 때 자기들 앞에 마스코트 삼아 걸어 뒀던 달이 이제 까딱까딱하며 떠있다. 광대한 우주 속에서는 이런 마스코트조차 더없이 위엄이 넘친다.

 

- 지구 바깥의 세계는 그날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동시에 가장 오래된 세계였다.

 

- 프리다이빙을 했을 때 넬은 생각했었다. 우주비행사가 이런 기분일까. 그리고 우주에 와 있는 지금은 가끔 눈을 감고 생각한다. 꼭 잠수하는 것 같네.

 

- 안톤은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눈물 네 방울이 동동 떠다닌다. 안톤과 치에가 손바닥을 내밀어 눈물방울을 잡는다. 여기서는 액체가 돌아다니게 둬서는 안 된다. 그 점에 있어서는 모두가 철두철미하다.

 

- 지산의 어느 생물을 고르든지 그 생물의 이야기가 곧 지구의 이야기가 되리라고, 문득 생각해 본다. 그 한 생물이 모든 걸 말해 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다가올 모든 미래를.

 

- 🔖 궤도 12 : 영화를 보다 잠든 우주인들. 

 

- 🔖 궤도 13 : 우주 생명의 역사를 세는 우주력.

 

- 지구는 작지 않지만 거의 끝없이 이어진다. 유려히 흐르는 운문들의 서사시다.

 

- 그나저나 어젯밤 말해 준 그 사건은 어떻게 됐어요? 이탄 습지에 빠졌다는 소 말이에요. (...) 건져 올렸대요. 종일 빠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밧줄을 미쓰비시 트럭에 연결해서 꺼내 올렸답니다. (...) 달의 남극점에 도착하면 착륙 지점이 대강 보일 거예요. (...) 남은 아홉 시간 동안 별 탈 없이 안전히 가시길, 교신 담당자가 말한다. 신의 보살핌과 행운이 따르기를, 한 팀원이 말하자 또 한 명이 덧붙인다. 소를 구한 모든 노력이 우리도 살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