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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책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 마이클 슈어

by 0l목 2026. 1. 21.




 

 

출처 : 교보문고

 

 

 

 

다시 시도하라.

그리고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딱 원하던 수준의 철학 입문서 아닐까 싶다. 다만 말장난이 뻥 안 치고 두 문장에 한 번은 튀어나와서 이 화법에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 다행인 점으로, 일단 드라마 <굿플레이스>를 먼저 선행 시청해 둔 뒤라 이런 적응 기간이 따로 필요하진 않았다는 점이고, 웃긴 걸 좋아해서 이런 화법이 오히려 어려운 철학 얘기를 이해하는 데 잘 들어맞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이타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무엇보다 나에게 그럴듯하고 제대로 설명하고 싶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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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스포

 

 

 

 

 

 

 

 

 

 

-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제로 저술한 것은 3분의 1 정도만 남아 후세에 전해졌다는데 그것만으로도 다음 주제들을 다룬다. 윤리학, 정치학, 생물학, 물리학, 수학, 동물학, 기상학, 영혼, 기억, 잠과 꿈, 웅변술, 논리학, 형이상학, 정치학, 음악, 연극, 심리학, 요리, 경제학, 배드민턴, 언어학, 정치학 그리고 미학. 리스트가 어찌나 긴지 '정치학'을 몰래 세 번이나 말했어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기원전 4세기에 있지도 않았던 '배드민턴'에 관해 저술했다고 대충 끼워 넣어도 몰랐을 테고(...) 👈이런 식의 농담이 진짜 쉴 새 없이 내내 쏟아진다.

 

- (...) 중용은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톱니바퀴다. 👈 인생은 항상 외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잡는 일과 같다...고 장황하게 설명해 온 개념을 이미 수천 년 전에, 누구나 다 알 만큼 유명한 학자가, 그의 책을 조금만 찾아 읽어보았더라면 찾기도 쉽게 대표적인 한 단어로 정리해 놓았다는 사실에 감명받아서 앞으로 이 단어 자주 쓸 예정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노의 중용"이라고 표현한 온화함의 예를 들어보자. (...) 올바른 것에 적정한 방법으로, 적당한 때에, 알맞은 사람에게 화가 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한다. (...) 자신을 향한 모욕을 받아들이고 가족과 친구를 향한 모욕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노예근성이다.

 

- 슈클라는 잔인함의 또 다른 속성도 이야기하는데 이것으로 친구가 카키색 바지를 놀렸다고 때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슈클라에 따르면 잔인함은 대체로 그것을 촉발한 행동과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인다.

 

- 훌륭한 계몽주의 철학자 몽테스키외의 명언을 빌리자면 "무지가 사람을 비정하게 만들 듯 '지식은 사람을 온순하게 만든다.'" 내 생각에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아할 만한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배우고 이해하려 할수록, 다시 말해 공감의 중용을 찾으려 할수록 그들을 잔인하게 대하기는 어려워진다. 👈관련해 KKK단을 직접 만나 그들과 친해진 후 교화시켰던 대럴 데이비스라는 뮤지션 겸 흑인운동가의 이야기가 떠오르던 부분이었다. 실제로 나도 내가 가진 편협한 생각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건 결국 내가 그들을 모른다는 강한 방증이라는 생각으로 최대한 구린 마음을 억누르려고 노력해 본다.

 

- 벤담의 초기 공리주의 주장에서 가장 좋은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가장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의미했다.

 

- 결과주의자는 우리의 행동이 좋은지 나쁜지 바로 알려준다는 점에서 위안을 준다. 그 해답은 증명이 가능한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도덕을 추상 개념에서 끌고 나와 마치 수학이나 화학처럼 대하도록 한 시도다. (...) 심지어 벤담은 측정 단위로 새로운 용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쾌락은 '헤돈hedons'이고 고통은 '도울러dolors'다. 이 친구는 사람들이 길을 걷다가 이런 말을 했으면 했던 것 같다. "계산해봐. 대형 체인점 대신 지역 농부들이 운영하는 시장에서 물건을 샀으니 3.7헤돈에 1.6도울러야. 선한 행동이었어."

 

- 강하고 오래도록 확실하고 빠르고 풍요롭고 순수한

행복은 알리고 고통은 인내해야 하지

은밀한 행복은 그대의 것이게 하나

모두의 행복은 널리 퍼뜨려 주오

무엇이 되었든 고통은 피하길

반드시 닥쳐야 한다면 조금만 오기를

(Menemonic Doggerel, 제러미 벤담)

☝️제러미 벤담이 남겼다는 시라는데 진짜 너무 웃겼다... "무엇이 되었든 고통은 피하길 반드시 닥쳐야 한다면 조금만 오기를" 

 

- 아쉽게도 공리주의는 자세히 뜯어볼수록 중심 신조마저 치명적 약점을 드러낸다. 단지 행복 극대화와 고통 최소화만 중요시하면 곧 불편한 진실과 마주친다. 마치 의사가 죄 없는 경비원의 목을 졸라 장기를 꺼낸 뒤 환자 다섯 명을 살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벤담의 최대 행복 원칙에 따르면 먹을 것과 뒹굴 진흙이 충분한 돼지가 비록 훌륭한 사상가였지만 아테네 전체를 화나게 만들어 교도소에서 독미나리를 먹고 죽은 소크라테스보다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그것이 인생에서 더 '성공'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 🔖공리주의의 허점을 드러낸 사고실험 중 하나 : 이 중 전기공 스티브와 월드컵 경기에 대한 부분 👈 철학의 사고실험은 진짜 웃긴 것 같다. 냅다 사람을 고장 난 트롤리 앞에 묶어두지 않나 전기공 스티브를 감전시키지 않나. 오로지 웃겨서 북마크 함.

 

-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주어진 결과에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해내는 일이다. (주석 : 글쎄, 사람들이 잘하지 못하는 그 한 가지는 사실 '비행기가 아주 조금 연착됐을 때 평정심 유지하기'지만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는 것 역시 간발의 차이로 2위다.)

 

- 우리가 한 행동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얼마나 선과 악을 창출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 인간 행동은 대부분 선행 단계(행동하기 전)나 행동이 끝난 후(결과를 관찰하는 순간) 완전한 관련 정보가 뒤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로 그 행동의 도덕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 윌리엄스는 공리주의자를 공격하는 데 '완결성integrity'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전체'보다 정직, 도덕적 올바름 또는 온전함의 의미를 지닌다.

 

- 정언명령을 이토록 유명하게 만든 주인공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도덕적 행동 규칙을 구분할 때 순수이성을 따라야 하며, 이 규칙을 따르고자 하는 확고한 의무감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떤 상황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 준칙'을 찾고 그 준칙대로 행동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오로지 중요한 것은 규칙이 무엇이든 따르고자 하는 의무를 고수하는 것이며 준칙은 행동에 따른 결과로 달라지지 않는다. '올바른 규칙대로 행동하는 것=도덕적 행동'이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도덕적 실패'다. 더 이상 타협은 없다. 타협의 여지도 도망칠 곳도 없고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 (...)칸트의 윤리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간단하다. (...) 스스로의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은 보편 법칙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정언명령은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규칙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도 따를 수 있는 법칙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만일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했을 때 세상이 망가질 것 같다면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 절대로 어떤 이유로도(봤지? 칸트, 이 친구 정말 하드코어다).

 

- 그러나 의무론 역시 새로운 문제를 동반한다. (...) 감정과 주관적 판단을 모두 발견해 따라야 하는 엄격한 보편 준칙으로 대체하면,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아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때로 윤리적 행동은 '감을 믿고 가는' 활동인데 칸트는 그 감은 어리석은 것이라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점이 칸트 사상에서 가장 자주 비판받는 부분이다.

 

- 칸트는 '실천명령'이라고도 하는 정언명령의 두 번째 공식을 제시한다. 가뜩이나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 칸트 철학에 규칙을 하나 더 추가한다. 나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 작은 친절의 중요한 점은 기본적으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 스캔론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 역시 갈등을 마주했을 때 반대편에 있는 우리에게도 상황이 정당하도록 자신의 이익을 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점이다. 이로써 끊임없이 변화하는 팽팽함이 조성되며 모든 사람이 타인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과 동일시한다.

 

- 계약주의에는 전제가 있다. 바로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최소 기준을 정하기 위해 적극적일 거라는 전제 아래 모두가 동의하고 따르기로 한 기준을 설정한다.

 

-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크고도 막연한 생각이지만 그 목표 없이는 '윤리'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계약주의자의 최소한을 넘어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선언하려면 그 의미를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 "우리가 있어서 내가 있다" 우분투는 한마디로 완벽히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이다(내가 찾아본 바로는 그렇다). (...) 우분투는 상당 부분을 경구나 일화, 속담으로 설명하는데 남아프리카 철학자 요한 브로드릭Johann Broodryk은 우분투를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적임, 보살핌, 나눔, 존중, 연민 그리고 모두가 가족이라는 의식 아래 변치 않는 인간의 공동체적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가치에 기반을 둔 고대 아프리카의 포괄적 세계관.

 

- 내가 볼 때 우분투의 전체 개념에 꽤 가까이 다가가는 속담이 하나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사람이 된다."

 

- 우분투에서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강조한다. 2006년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우분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어렸던 그 옛날, 우리나라로 여행을 온 한 사람이 내가 사는 마을에 당도했다. 그 사람은 음식이나 물을 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마을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음식을 가져다주고 보살폈다. 이것은 한 단면일 뿐 우분투는 다양한 형태를 지닌다. (...)우분투는 스스로 부유해지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주위 공동체도 함께 성장하도록 하고 있는가?" 👈책을 통해 배운 몇가지 철학적 개념들 중에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깊고 마땅하며 필요한 고찰이라고 생각했음.  

 

- 케냐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S. 음비티John S. Mbit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큰 전체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개인은 혼자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 사람은 존재 자체로 다른 사람에게 의무를 지는데 여기서 다른 사람이란 지난 세대와 동시대의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개인은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 "나는 우리로 인해 존재하고 우리가 있어서 내가 존재한다." 다른 사람에게 그냥 의무만 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빌어먹을 존재 자체 때문에 타인에게 의무를 진다. (...) 다시 말해 주변 사람의 짐을 덜 수 있다면 그 망할 놈의 쇼핑 카트는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한다.

 

- 서양 사상에서 가장 기본 사상 중 하나인 그 유명한 데카르트 철학의 제1명제, '코기토 에르고 줌Cogito, ergo sum'(앞서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원문)을 잠시 생각해 보자. (...) 데카르트는 자신의 단일 의식으로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다. 우분투를 실행하는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정의할 때 다란 사람의 존재를 조건으로 한다.

 

- 전통 공리주의는 어떻게 하면 선하게 살 수 있는지 간단한 규칙을 제시하지만(...) 기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어디쯤에서 선한 행동을 멈춰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 울프에 따르면 '행복 펌프' 역할을 하는 사람은 기본값을 '자기 보호'가 아닌 '타인 보호'로 설정한다. 자아가 뒤집힌 것이다.

 

-  울프는 더할 수 없이 건조한 어조로 이렇게 서술한다. "도덕적 성인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공격적이지 않은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럴 경우 지루하고 유머 감각이 없으며 무미건조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걱정이다."

 

- 중용은 말 자체로 모든 덕의 하한선과 상한선을 제시한다. 시소의 극단적 양 끝은 악이다. (...) 이상적인 덕의 양은 지나침과 부족함의 중간 지점, 이론상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그 지점이다. 시소보다 줄다리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 동기의 순수함을 요구하는 것은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하는 영역에서 그 수요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 형광펜 그어두고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읽어보았는데, 경쟁적으로 자선 파티를 개최하여(쟤는 이겨야지) 종국에 많은 금액을 기부하게 된 경우라면 의도의 순수성이 훼손되었으니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는가?에 대한 사례와 함께 실용주의가 소개된 부분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이런 경우라면 나도 동기의 순수성을 결과에서 읽을 수 있는 효용성이 압도했다고 생각한다.

 

- 어떤 사건을 정확히 묘사할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설명하든 실제로 일어난 일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나머지는 그저 의미론적 논쟁일 뿐이다. 이것이 실용주의가 묻는 바다.

 

- 실용주의를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선하고 순수한 의도로 현재에 집중하는 삶에서도 너무 멀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 부유한 사람들이 공부를 못하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고 거액을 기부하거나 새클러Sackler 일가가 중독성 처방약물을 불법적으로 판매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덮기 위해 여러 박물관에 기부하는 그런 행태 말이다. 이런 것은 누가 봐도 윤리적 행동이 아니다. 👈 작가는 이 행동을 정확히 '악행'이라고 꼬집었는데 근래에 몇 차례 보였던 여성 비하, 지역 비하 등의 차별 발언 후 관련 시민단체에 기부한 유명인들의 행위가 바로 떠올랐다.

 

- 나는 키보드와 발군의 도덕적 사유를 무기로 나 혼자 뉴올리언스를 구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다 속이 메스꺼워졌다. 👈 이 메스꺼움이 십분 이해되었다...

 

- X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X와 상관없는 Y가 훨씬 더 급한 일이라며 망신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을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하며 요즘 말로는 '그쪽이야말로주의whataboutism'다. 이는 보통 방어 전략으로 사용한다.

 

- 망신 주기가 윤리적 성과를 내는 데 과연 생산성 있는 방법인가 하는 점이다. (...) 형벌의 목적은 스스로 저지른 일의 결과를 책임지게 하는 것과 앞으로의 행동을 바꾸게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절벽 끝으로 밀리고 샌드백처럼 공개적으로 두드려맞으면 그게 어려워진다.

 

- 그 사건(작은 접촉 사고에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한 운전자와 싸우며 부끄러움을 느낀 사건)을 다시 살펴보면 앞에서 다룬 줄리아 애나스가 한 말의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다. "(덕을 연습하면) 단순한 습관에 필적하는 반응 속도와 직접성을 획득하지만, 그렇게 학습한 교훈이 정보를 제공하고 유연성과 혁신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습관과는 차이가 있다."

 

- 언제나 옳은 행동을 하려고 하면(여기서 좀 이상한 철학 용어를 하나 쓰고자 하니 이해바란다) 돌아버리기 십상이다.

 

- 사소한 규칙을 어길지라도 그 행위가 이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규칙을 위반하면서도 안 그런척하면 당신의 사소한 나쁜 행동이 초래한 최소한의 해로움이 계속 쌓여 점점 커진다. 심지어 자신을 바라보는 사고방식마저 바꿔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까지 바뀔 수 있다.

 

- 공공정책 분야에 오버톤 윈도Overton window라는 개념이 있다. (...)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개념이 수용 가능한 개념으로 바뀌면서 결국 현실이 되는 것이다. (...) 오버톤 윈도는 모든 현상의 범위에 사용이 가능하며 자신의 행동 중 어디까지를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 아무 때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자 하는 자기 '권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으면 오로지 자신의 행복과 고통에만 도덕적 감각을 쏟는다. 👈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 한 저명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인 랜드에게는 딱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생각도 없고 글도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주석 : 토드가 한 말이다.) 👈 여기에 언급된 두 명의 학자 中 아인 랜드는 19세기에 합리적 이기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 진정한 윤리와 사회 진보를 이루기 위해 오로지 자신의 행복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 단순히 말해 내 생각만 하자는 주장을 했던 학자이고, 토드는 저자가 책을 쓰는 데에 도움을 준 저자의 친구이다.

 

-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가능한 한 이기적일 것!'을 주요 윤리 사상으로 인정하는 세상에 사는 것은 사실이다. (...) 타인 인생의 가치 같은 건 무시하고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라고, 누구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 개인적으로 정말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각자도생인데, 이 말이 어느 정도 통용되는 사회인게 비단 한국뿐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여튼, 각자도생은 자기 방어를 위시한 적극적으로 공격적인 삶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기적인 태도가 시대정신이 된 데에는 경제 불안정이 그 근간에 있지 않나 싶어 개개인의 잘못으로만 볼 수도 없지 않나 싶다.

 

- 도덕에 신경 쓰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할 때 실패는 피할수 없는 결과다. (...) 대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든 작든 실패를 겪었을 때 그것을 스스로 돌아보고 다음번에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실패의 느낌을 떠올려야 한다는 점이다.

 

- 이 일로 두 가지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하나는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은 상당히 성가신 일이라는 점이다. 이건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하나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면 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다.

 

- 싱어는 1999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또 다른 글에서 "공식은 간단하다.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에 쓰는 돈은 모두 기부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싱어는 이마누엘 칸트의 결과주의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하드코어 철학자다. 필수 도덕 관점이 굉장히 확고해 나는 싱어가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Mad Max : Fury Road>에 나오는 톰 하디처럼 생겼을 거라고 상상했다. 👈 아니, 진짜 웃겨 죽는 줄.

 

- 이제 빌게이츠를 향한 싱어의 불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300억 달러를 기부한 것은 훌륭하지만 아직도 530억 달러가 있으면 그중 거의 전부를기부해야 한다. (...) 빌 게이츠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갖고 있는 것은? 530억 달러. 👈 너무 하드코어이긴 한데 사실상 맞는 말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음. 열심히 일 해서 번돈을 강제로 기부해야 하나요? 하는 질문에는 그러라고 대답하고 싶음. 아니, 뭐 부자 걱정까지 해야 할 필요가. 심지어 빌게이츠는 지금 당장 가진 돈 전부를 기부하더라도(세금 낼 돈은 제외해 주겠음) 금방 다시 재산을 끌어모을 수 있는 하드코어 갑부 중 하나다. 물론 이 뒤에 지적된 싱어의 주장에 반대하는 의견도 충분히 일리 있다. 삶에는 조금의 즐거움이 필요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도 당장 앞으로 들어갈 부모님의 병원비와 한 사오십 년 뒤에 들어갈 나의 병원비를 위해 저축한다. 

 

-  그 멍청한 짓을 하면서 윤리적 기회비용을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할 수 있었던 더 나은 일들, 즉 윤리적 기회비용에 확고부동하게 집중한다는 점이 내가 싱어를 좋아하는 이유다. 신나서 벌이는 멍청한 짓들에 초를 치는 그 지점 말이다. 👈 나도 이런 하드코어 한 사람의 말에 크게 설득되진 않지만, 그래도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윤리 딜레마는 우리 세대에게 특히 두드러진다.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어떤 정보든 구할 수 있는 시대라서 의도치 않게 나쁜 결정을 내리면 죄책감을(아니면 망신을) 피할 길이 없다. 👈 물건 하나 사고 났더니 알고보니 그 기업이 노동착취의 선두주자였다라는 얘기 같은 걸 듣고 나면 남들이 그렇다고 하지 않더라도 내 자신의 부끄러움을 참을 수가 없다. 더구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떤 죄악(다소 감정적인 단어 사용임은 인정한다)은 용인하고 마는 모순 또한 발견하게 되면 아주 미치겠다!!!!!!

 

- 설령 결과가 이상적이지 않더라도(...) 처음의 의도가 좋았다는 점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 다시 시도하라. 그리고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 '언제나 이래왔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 마지막에 나오는, 그러니까 진정 무식에서 나오는 방패다. (...) 이전의 관례와 선례에만 매달려 그것이 빚어낸 결과를 두고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생각과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에 엿을 먹이는 행위다.

 

- 응구바네는 아프리카에 사는 한 백인 민족주의자가 이전부터 이어져 온 도덕적 부패를 구실로 아파르트헤이트를 지지하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이것이 삶의 방식이자 지신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사회질서이고 세계관이다. (...) 그에게 역사란 계속해서 펼쳐지는 경험으로, 그 역사의 타당성은 미래를 향한 안내자 역할에 있지 않고 정당화에 있다. (...) 그것을 수정하도록 요구받을 때 매우 당황한다. 그의 관점에서는 평등을 원하는 모든 외침이 그가 직접 자신을 위해 창조한 세계를 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 '세상에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한 내게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현재 세상을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한 사람들에게 변화란 지금 문제가 있는 이 현실을 만들거나 유지하고자 자신들이 내린 결정에 정면을 맞서는 일이다. 👈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이유가 설명됨.

 

- 집에 앉아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작은 '악'을 생성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 선택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 언제나 세상을 바꿀 일 없을 만큼 사소한 결정이거나 아무도 모를 일 없는 내면 속 생각일 뿐일지라도 그것이 내 인간성에 영향을 끼친다면 결코 사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법이다.

 

-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 혹은 다른 어떤 것에 결코 바뀔 수 없는 흠집이 있는데 인정하지 않거나 아니면 죽어서 인정할 수 없을 때(...)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것은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 이것저것 오타쿠로 산다는 것은 고통 속에 산다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  문제가 있는 사람 혹은 어떤 것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거기에서 떨어질 수 없다면 동시에 아래 두 가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1. 나는 이것이 좋다. 2. 이것을 만든 사람은 문제가 많다. 1번을 잊으면 자기 자신의 한 조각을 잃고 만다. 2번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초래한 분노를 부정하는 셈이며 끔찍한 행동의 피해자에게 공감하지 못한다.

 

- 🔖철학을 논할 때 '휴리스틱 heuristic'이라는 단어를 쓸 때가 있다. 휴리스틱은 문제를 제공해 해결책을 찾게 하는 일종의 도구로 행동지침이 되는 경험적 지식을 의미한다(...). 👈 어떤 사안을 그저 고민하는 데에 그치면 결국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 어떤 때는 그저 행동해야 하며 > 그렇게 매 순간 선을 긋다 보면 그 안의 모순을 발견하는 순간이 오기 때문에 > 바로 그 실패 속에 본인의 신념과 윤리를 되짚어보고 > 다시 제대로 된 선을 그을 수 있게 된다는 내용. 무엇보다 고민에서 그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라는 말에 알아서 회초리를 맞았다.

 

- 어떤 때는 그저 행동해야 한다. 👈 위 북마크 한 내용 중 일부인데 되새기려고 한 번 더 써봤다.

 

- '실존적'이라는 단어는 실제보다 있어 보이려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이 단어를 쓸 때 사람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훨씬 단순하다. 👈 여기 포함된 표가 진짜 웃기다.

 

-  실존주의는 정점에 있을 때조차 큰 오해와 비판을 받았다. 1945년 10월 29일 프랑스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ㅡJean-Paul Sartre는 사실을 바로잡고자 파리에서 '실존주의는 인본주의다'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 그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이것이다. 인간이 존재하기 전이나 후에 어떤 종류의 의미로 세상을 채우는 거대한 구조가 없다면 "인간은 자기 존재에 책임이 있다." 👈 무신론자인 내게는 이 생각이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실존주의의 제대로 된 의미를 알기 전부터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았기 때문에 나의 일면이 사실 엄청 실존주의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

 

- 사르트르와 카뮈는 동시대 프랑스 실존주의자로 둘 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우선 카뮈는 노벨상을 수락했으나 사르트르는 거절했다. 엄청나게 '펑크록punk rock' 같고 극도로 프랑스적이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의 핵심을 찾고자 여러 다른 것을 계속 시도해보길 요구했다면 실존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계속해서 선택하라. 이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택뿐이다. 👈선행된 내용으로 인간 삶이 부조리한 이유는 인간은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사실 삶에는 아무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난 이 부조리함이 좋다. 정확히는 아무 이유 없는 삶이 좋고, 때문에 삶에 의미를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라는 데에서 오는 주체성이 좋다.

 

- (...) 모든 사람에게는 덕을 감출 잠재력이 있다. 애나스는 그 사실을 환경 때문에 타고난 잠재력을 실제 덕으로 계발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을 향한 무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 하지만 그 잠재력을 집어치워버린 사람은 공격해도 되나요, 그렇다고 해주세요.

 

- 모든 사람에게 같은 윤리 이론을 적용할 때의 기본 문제는 모든 사람의 삶이 같지 않다는 데 있다. 👈 넹 ㅜㅜ

 

- (중산층 건강한 백인 남자로 태어난 저자가 자신을 돌아보며) 그 행운이 내게 어떤 의미일까? 내가 다음의 사회적 병폐로부터 자동 제외되었다는 뜻이다.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차별, 여성혐오, 기근, 빈곤, 자금 부족에 허덕이는 질 낮은 학교, 전쟁(국내에서 일어나는), 깨끗한 물 부족, 의료 서비스 부족 👈 나는 어떤 사회적 병폐로부터 자동 제외되었는지 살펴보고 싶다 : 인종차별(국내에서 일어나는), 장애인차별, 기근, 빈곤, 전쟁(국내에서 일어나는), 깨끗한 물 부족, 의료 서비스 부족

 

-  (...)프랭크는 사람의 인생에서 운이 차지하는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 다시 말해 부와 성공을 크게 이룬(또는 물려받은) 사람은 그것을 스스로 획득한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러한 믿음은 이 크고 어처구니없고 무서운 세상을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프랭크라는 사람은 사회학자 로버트 프랭크라는 사람. 심장마비(돌연 심장사라는 의학적 상태로 치사율이 98프로라고 한다)를 겪었으나 우연찮게 1분 거리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출발했던 구급차 중 하나가 즉시 프랭크를 병원으로 이송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자신의 일화를 통해 운의 힘을 깨달았다고. 일전에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을 때도 능력주의의 한계에 대해 꼬집으며 마이클 센델이 언급한 운의 힘이 떠오르는 구절이었다. 그냥 부모님들이 으레 말해온 '한국에서 태어난 걸 다행으로 여기라'라는 투의 말에는 사실 그보다 깊은 삶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부모님들은 이런 의미를 담아 얘기한 것 같지는 않다)

 

- 언제나 이 생각을 한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시기에 다른 몸으로 이만큼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태어났다면, 내 삶이 어땠을까. 여러 면에서 얼마나 쉽게 인생의 비디오 게임을 해왔는지도 생각한다. (...) 매일 일상에서 내가 요구받는 도덕적 책임은 평균보다 훨씬 큰 것이어야 한다. 대다수 사람이 내게 지는 의무보다 내가 그들에게 지는 의무가 훨씬 크다. 

 

- 그렇다고 운이 나쁜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 누군가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상황이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을 고려해주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다.

 

- 녹록지 않아 배터리가 1퍼센트밖에 남지 않은 채로 근근이 살아간다면 계약주의 규칙으로 다시 돌아가 서로에게 진 최소한의 의무를 갚고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 나태해질 때마다 되새겨야겠다...

 

- 윤리적 행동의 핵심이 타인을 향한 배려와 지속적인 노력이고 실패는 피할 수 없는 결과라면 사과는 그 실패의 퇴직자 면접exit interview(퇴직 예공자와 면접을 진행해 퇴직 원인을 밝히고 조직 내 기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옮긴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사과할 때의 그 불쾌한 감정,(...) 수치심이 몰려오는 건 좋은 것이다. 잘못으로 인해 고통을 느낀다는 의미이자 잘못을 부끄러워한다는 뜻이 아닌가(...). 이 느낌은감기 증상과 같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을 치유하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 👈 사과하는 방법을 잘 연습해야겠다... 반성 또 반성. 😭  

 

- 🔖싱어송라이터 톰 페티가 공연 중 사용한 남부연합 전쟁 깃발에 대해 인터뷰 중 사과했을 때 :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버티거나 변명하지 않고 분명하게 사과하는 태도가 정말 멋있다.

 

- 프랭크퍼트는 개소리와 거짓말을 구분하려 한다. 그는 "거짓말하는 것은 (...) 진실이 그 지점을 차지하지 않도록 하려고 특정 거짓을 정확히 삽입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 그저 자신의 원하는 특정 방식으로 보이게 함으로써 청자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할 뿐이다. 👈 해리 G.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1929~) :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가 명예 교수. 1986년 논문 <개소리에 대하여In Bullshit>를 발표한 후 2005년 책으로 출판함.

 

- 개소리쟁이의 목표는 한 가지다.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려는 것뿐이다. (...)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개소리의 본질은 잘못이 아니라 가짜다."

 

- 진정성 없는 사과의 또 다른 전형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라고 하는 것이다. (...) 하지만 속뜻은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와 '네가 바보라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나 본데, 네가 바보인 점이 유감이다'를 합친 말이다.

 

- 국가가 행한 죄는 국가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 일이 얼마나 오래전에 일어났는지는 상관이 없다. 국가적 사과는 단순한 선언 형태일 수도 있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선언과 함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후손에게 실제로 보상하는 일이다.

 

-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실수를 두고 전임자들을 대신해 사과했다. 이 사건에서 눈에 띄는 점은 교황이 사과한 상대가 갈릴레오 갈릴레이였고 1633년에 일어난 실수에 사과했다는 점이다.

 

- 🔖 저자 마이클 슈어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 👈 사실상 이는 자녀에게 이르는 척 독자에게 전하는 삶의 교훈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내가 나이에 의한 위계질서에 아주 약한 한국인이고 저자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여튼 그렇게 받아들일만한 이야기들이긴 하다.

 

- 현대 삶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함정, 특히 특권을 쥐고 태어난 운 좋은 사람들에게 도사리고 있는 그 함정으로부터 너희가 안전하기를 바란다. 이기심과 무관심, 잔인함, 위선, 오만함 같은 걸 말하는 거다.

 

-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더 잘할 수는 없을까? 그것은 왜 더 나은 행동인가?

 

- 나이 든다는 것의 역설 중 하나는 10년마다 10년 전 자신을 돌아보고 움찔하게 된다는 점이다. 👈 이는 나이 든다는 것의 가장 큰 이점이고 내가 매 순간 나이 먹는 것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다.

 

- 다시 시도하지 않는 것 역시 선택인데 그 선택은 너희를(그 누구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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