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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책

체체파리의 비법 /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by 0l목 2025. 2. 18.

 

 
체체파리의 비법
‘SF의 페미니즘적 가능성’을 온전히 실현한 작가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주요 작품들을 담은 중단편선집『체체파리의 비법』. 다양한 사유실험으로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저자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표제작 《체체파리 비법》을 포함해 모두 7개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펄프 픽션의 외형을 취하면서도 성(젠더), 자아, 환경,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저자가 앨리스 셸던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와 라쿠나 셸던
저자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출판
아작
출판일
2016.03.25

 

 

 

★★★☆

 

 

"나는 반은 여성이고, 다른 반은 인간이에요. 오늘날 그 두 가지는 같지 않지요."

― 1984년, 개인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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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스포

 

 

 

   걸작선, 단편집 등을 읽을 때 꼭 하고 싶었던 게 있다. 그건 바로 작품별로 감상 남기기다!

 

 

+)

   솔직히 말하자면 책 서두에 작가의 삶에 대한 글을 읽다가 말년 이야기를 보고 충격에 빠져 한 차례 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돈 주고 샀으니 봐야지, 우째...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재밌어서 되레 억지로 끊어가며 읽는 중이다. 문체가 엄청 마초적인데 그가 아직 정체를 공개하지 않고 활동하던 당시에 그를 두고 '절대 여자 작가일리 없다'라고 단언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더구나 1960년대였다). 현재 두 번째 단편 '접속된 소녀'를 읽는 중이다.

 

+)

   네 번째 장을 읽는 중이다. 엄청 폭력적이고 원색적이기까지 한 묘사가 나온다. 여성을 향한 폭력적이고 원색적인, 구시대적인 남성의 시각이 여성 작가에 의해 묘사될 때에는 그 자체로 전복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다(의도되었는지, 본질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근래에 하고 있는 생각 중 하나가 '(여성을 욕망하는 데에 있어 특히) 남자들의 방식을 따라 하고 싶지 않다'라는 것인데 그 점에서는 영 걸기작거리는 면이 없잖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심지어 욕망이라고 볼 수도 없잖나 싶지만, 여하튼). 그러나 그건 수십 년 전 쓰인 글을 2025년에 와서야 읽고 있는 내 입장에서나 그런 것이다. 더불어 약자가 사실적으로 강자를 묘사할수록 일면 고발적인 성격이 강해지니까, 이해하기가 어렵진 않다는 점이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

   여섯 번째 단편, 덧없는 존재감을 읽는 중. Ⅲ장 말미에 정말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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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스포

 

 

 

 

🪰01. 체체파리의 비법 The screawfly solution ★★★ : 여성을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남성의 페미사이드식 전염병(?)을 종식시키기 위한 방법과 사람을 치명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체체파리를 멸종시키 위한 방법이 사실상 같다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과학자의 말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여성 과학자는 보호받지 못한 채 살해당했고 아버지는 딸을 살해하는 비극이 이어지는데...

 

   서술 방식이 두서없이 급변하지만, 그렇다고 못 따라갈 만큼 어렵진 않았다. 여자를 죽이는 방식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종의 번식을 거세한 남성들에 의해 결국 멸종하게 될 인간의 이야기지 않았나 싶다. 이런 식의 악행이 수용되는 '생활 방식'을 갖춘 종이라면 멸종해도 할 말 없지 않나? 싶어 코웃음이 쳐지다가도, 이 이야기가 사실상 현실의 극단적인 확장판이라는 점을 곱씹어보면 그 웃음의 뒷맛이 사실은 상당히 씁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 '한 남자가 아내를 죽이면 살인이라고 부르지만, 충분히 많은 수가 같은 행동을 하면 생활 방식이라고 부른다.'

 

- 너무 많은 지역이 뉴스에서 그냥 사라져 버려서, 난 남쪽에 살아남은 여자가 하나도 없는 악몽도 꿨어. 그리고 아무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 하지만 드러난 사실은 하나도 없어. 아무것도. 공중위생국장은 라흐웨이 가슴 째기 팀(내가 이 이야기는 안 했지 아마)의 시체들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어. 어쨌든, 그들은 어떤 병리 증상도 찾지 못했어. 밀튼 베인즈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어.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성자의 뇌와 정신병적 살인자의 뇌를 구분할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모르는 대상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겠느냐고.

 

- 우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그냥 하나둘씩 살해당하잖아요.

 

- 어쨌든, 앞문으로 남자들 몇 명이 들어왔어요. 웃고 농담하는 모습이 하나같이 정말 평범해 보였죠.

- 약한 고리를 집어서 공격하고, 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거예요.

 

 

 

 

🔌02. 접속된 소녀 The girl who was a plugged in ★★★★ : 타고난 신체적 특성을 이유로 평생을 괴롭게 살던 끝에 자살을 시도한 소녀에게 어떤 기업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현대 기술의 정점에서 탄생한 원격 조종 기계를 통해 아름답고 스타성 있으며 접속자 없이는 시체와 마찬가지로 존재할 뿐인 실제 신체에 접속해 스타가 되자는 것. 그리고 소녀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건 분명 옳은 선택이었다. 소녀는 심지어 타인의 신체를 조종하는 데에 타고난 재능까지 갖췄던 것이다. 그렇게 소녀는 일평생 숙원해온 아름답고 유명하고 사랑받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원제를 보니 과거형이다.

출처 : 트위터 (현 X) https://x.com/Not_mememy/status/1886344078541078649

   유독 블랙미러 같은 드라마라 만들어지면 재밌는 단편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마도 방송 매체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 것 같다.

 

+)

   옮긴이의 글에 따르면 최초의 사이버펑크라고 꼽히는 작품이라고 한다.😲 사이버펑크 장르의 시초로 불리는 소설인 《뉴로맨서》(1984)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팁트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별 반 개를 더 붙였다. 

 

 

- 캔들은 서글픈 미소를 지어. "과잉 반응이지. 역사는 진자 운동을 해요. 사람들은 과잉 반응을 해서 꼭 필요한 사회 발전을 짓밟으려는 잔인하고 비현실적인 법을 통과시키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진자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거야."

 

- P.버크라는 존재가 지하에 남겨졌다는 사소한 사실에는 아무 의미도 없어. P.버크는 완전히 자각을 상실하고 행복하게 껍질 속의 조개가 되어 있거든. (P.버크의 침대는 이제 옆방의 왈도 캐비닛 방으로 옮겨졌어.)

 

- 폴은 알지 못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기괴한 광경이야. 원격은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지지 않거든.

 

- 폴은 왈도와 P.버크 같은 물건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어.

 

- 정말이야, 좀비. 내가 성장을 말할 땐, 진짜 성장을 말하는 거야. 자본 이득의 증가 말이야. 이제 땀은 그만 흘려도 돼. 저기 눈부신 미래가 있어.

 

 

 

 

03. 🏝️보이지 않는 여자들 The woman man can't see ★★★ : 남자는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처음 만난 모녀, 마야인 조종사와 함께 섬에 고립된다. 그들의 실종을 깨달은 사람들이 수색에 나설 때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 그러나, 모녀 중 어머니에게 뭔가 수상한 기색이 느껴지는데...

 

   아는 지인과 난민 수용에 대해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반대하던 입장이었고, 나는 따지자면 중간쯤에서 조금 더 찬성에 가까운 입장이었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던 그는 "걔네는 무슬림이잖아. 한국 여자들은 강간당할 거야. 너도 그런 건 원치 않잖아."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 순간 나는 먼저 '저건 의견도 아니고 협박이잖아.'라고 생각했다. 뒤이어 내 안에 똑같이 자리 잡은 편견을 부끄럽게 마주했다. '혹시 진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리고 연이어 '하지만, 이미 어제, 오늘만 해도 수 건의 여자들이 한국 남자들에게 강간, 살해당한 뉴스들을 보아왔는데(그리고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성범죄들이 존재할 텐데) 뭐가 다른가?'라는 생각을 했다(물론 여기서 생각을 결론지었다는 건 아니다). 순차적인 발상이었지만,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듯 떠올랐기 때문에 결국 이 생각과 기분을 정리하지 못하고 "그래, 이 이야기는 그만하자."며 대화를 중단시켰던 기억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말싸움을 이어가기엔 무리가 있기도 했다(논외의 이야기지만, 짧게 덧붙이자면 난민에 대해 갖고 있던 내 안의 편견을 깨기 위해 관련 서적이나 기사, 인터뷰 등을 찾아봤다). 이 단편은 정확히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단편이었다. 외계인에게 자신을 데려가달라는 여자들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남의 목소리 같지 않았다.

 

+)

   옮긴이의 글에 따르면, 화자가 '위협적이지 않은 남성'으로 등장함에도 여성에 대한 이해의 한계에 봉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작 작가는 이후 중년 남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게 어려웠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발표 당시 이 소설을 두고 로버트 실버버그라는 작가는 '철저히 남성 입장에서 쓰인 깊이 있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칭찬했다니 너무 재밌는 일이다(팁트리의 정체가 밝혀진 이후 로버트 실버버그는 오랜 시간 놀림감이 되었다고 한다.).

 

 

- 나는 내 잠재의식을 걷어차면서 다소 천천히 나이프를 건네준다. 저렇게 점잖고 평범하고 자그마한 여자를, 훌륭한 걸스카우트를 의심하다니....

 

- "전 에스테반 기장이 아주 우수한 남성이라고 믿어요." 그 말에 나는 조금 놀란다. 보통은 "전 알시아를 믿어요"라든가, 조금 분개해서 "알시아는 착한 아이예요" 정도가 나와야 맞는 게 아닌가?

 

- "여자들에게 권리 같은 건 없어요, 돈. 남자들이 허용할 때를 빼면 없죠. 남자들이 더 공격적이고 더 강력하고, 남자들이 세계를 돌려요. 다음에 또 진짜 위기가 일어나서 남자들을 뒤흔들면 우리의 소위 권리라는 건 마치 연기처럼 사라질 거예요. 우린 언제나 그랬던 대로, 소유물로 돌아가겠죠. 그리고 잘못된 일은 모두 우리의 자유 탓이 될 거예요. 로마의 멸망이 그랬던 것처럼요. 당신도 알게 될 거예요."

 

- "우리를 주머니쥐쯤으로 생각하세요, 돈. 주머니쥐는 어디에나 산다는 거 아셨나요? 심지어 뉴욕시에도 있다니까요."

 

- "남자들도 전쟁을 싫어합니다, 루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한다. "알아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 일어선다. "하지만 그게 당신들의 문제죠, 안 그래요?"

 

- "그래요, 이해해요." 루스가 외친다. "우린 돌아오길 원하지 않아요. 제발 데리고 가줘요!"

 

- '우린 당신네 세계 기계의 틈바구니에서 하나둘씩 목숨을 부지해요.' '외계인이라면 익숙해요....' 모두 진심이었다. 정신 나간 소리다. 어떻게 한 여자가 자기 집과 자기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알지도 못하는 괴물들 사이에 살기를 택할 수가 있단 말인가?

 

 

 

 

 

04. 🚀휴스턴, 휴스턴, 들리는가? HOUSTON, HOUSTON, Do you read? ★★★ : 대형 플레어로 일어난 붕괴가 국지적인 시간면을 무너뜨렸고, 더 이상 우리의 휴스턴 관제센터는 응답하지 않는다. 세 명의 우주인이 이대로 고립될 위기에 놓였을 때 정체불명의 관제센터가 응답한다. 그들은 과거에 '선버드'호가 실종되었고, 당신들이 그 탑승자들로 추정된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와 함께 구조의 손길을 내민다. 주인공 로리머와 두 명의 알파 메일들은 그렇게 미래의 우주선에 올랐는데... 어째서 우주선은 온통 여자 투성이일까?

 

   박경리 작가의 유명한 "의도가 아니라 그건 그냥 리얼리즘이지요."라는 대사가 떠오르는 단편이었다. 이 작품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남자 캐릭터라고는  여성을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보는 버나드와 여성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보는 데이비스, 그리고 여성을 무서워하는 로리머까지 단 셋인데 이들의 모습이 너무 재밌게 묘사되어 있어서 읽다가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버나드가 성욕을 참지 못하고 사달을 낼 때에는, 뭐, 사실 지겨운 모습이니 그러려니 했는데(별개로 이 작가가 묘사하는 (여성에 대한)폭력이 다소 소화가 어렵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이어서 데이비스가 종교적 사명감🤭을 끌어안은 채 폭주하고 이어서 나가리 된 두 남자와 알파메일을 숭배하며 여자들을 탓하는 로리머를 보고 있자니 어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선실 안의 미래 인류들과 동행해 남성의 모습을 통해 두드러지는 인간의 전형을 관찰하는 체험을 한 것 같은 단편이었다.

 

+)

   '성차별이 여성 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가하는 괴로움을 정확하게 집어냈다.'라는 옮긴이의 말에 동의하는 한편 반성했다. 늘상 성차별이 어떻게 남성에게도 위해한지 잊지 않으려고 함에도 책을 읽는 내내 로리머를 찌질남으로만 생각한 것에 대해...😓

 

 

- 난 반쪽짜리 사나이야. 30센티미터만 더 크고 40킬로그램만 더 무거우면 그들과 똑같겠지. 그들, 알파 수컷들. 그들도 물밑으로는 베타 수컷의 분노를 감지할지도 몰라. 선버드 호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그런 그림자를 드리운 농담들이 나오지 않았던가? 1년 내내 버나드와 데이비스가 편먹고 게임을 주도했지. 나에게는 너무 빡빡하게 맞춰져 있던 그 망할 실내 자전거.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야. 우린 한 팀이었으니까.

 

- 이제까지 수없이 그랬듯이, 로리머는 데이비스가 자기한테 의견을 구했다는 것만으로 고마움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고작 이런 일로 고마워한다는 게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갔다.

 

- 왜 난 버나드처럼 말하지 못했을까. 로리머는 익숙한 확인 순서를 따라가면서 스스로 무수히 물었던 질문을 다시 묻는다. 아니, 대답하지 말자.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그들의 완벽함에 왠지 모를 감동을 느낀다. 진짜배기들, 알파 수컷들. 그들의 유대감. 학창 시절 구기팀의 터무니없는 운동선수들에게 처음 느꼈던 그 경외감.

 

- 도리스에게는 다섯 남자를 먹이는 여자 특유의 광채가 있지. 아들이 있는 여자들은 달라. 하지만 로리머의 사랑하는 아내 지니는, 그의 딸들은... 이제 할머니일까? 다 죽어서 먼지가 됐나? 👈실제 제 곁에 있는 사람들보다 제 안의 자격지심과 끊임없는 비교의 족쇄에 갇혀 사실상 관련 없는 타인을 숭배하는 모습. 소위 '베타 수컷'만의 태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베타 수컷'을 통해 묘사될수록 씁쓸해진다는 사실은 감출 수가 없다.

 

- 로리머는 덩치 큰 남자 두 명에게 묶여서 심연을 가로질러 끌려가려니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편안하다. 그는 데이비스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이 줄을 놓치고 옆으로 비껴가서 미아가 될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는다. 데이비스는 이런 그에게 경멸을 느낄까? 궁금하다. 쌓여가는 침묵, 그건 오직 기호들만을 다룰 수 있고, 물질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배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경멸을 뜻하는 걸까?... 로리머는 울렁거리는 위장을 통제하는 데 집중한다.

 

- "그야, 멍청아,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치가 없으니까 그렇지... 사나이들이, 훌륭한 카우보이들이 있어야... 이 몸은 훌륭한 카우보이야...."

 

- 데이비스는 밤색 턱수염과 머리카락에 햇빛을 받으며 똑바로 떠서, 생각에 잠긴 눈으로 로리머를 바라본다. 진정한 사나이의 모습이다. 로리머는 자기 아버지를, 자기처럼 작고 창백한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한다. 기분이 나아진다.

 

- 데이비스가 힘 있는 말투로 말한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고린도전서 11장 3절. 아무런 기강도 규율도 없어." 데이비스는 덩굴벽을 향해 흘러가면서 팔을 뻗어 십자가를 들어 올린다. "조롱거리야. 혐오스러운 짓이고." 데이비스는 늘어선 말뚝 앞에서 몸을 돌려, 녹색 나무 그늘을 액자처럼 두른다. "우린 이곳으로 보내진 거야, 로리머. 이건 주님의 계획이야.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어. 자네는 아니지. 자네는 저들만큼이나 나빠. 내 중간 이름은 *폴이라네."

* 폴 : 사도 '바울'의 영어 이름.

 

-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디모데서 2장 11절. 저들은 저들을 통치하고 주님의 이름을 영광되이 할 아들들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좋은 남자들이었어요." 로리머는 애가哀歌처럼 되풀이해서 말한다. 그는 지금 자신이 그 모두를 대신하여 말하고 있음을 안다. 데이비스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버나드의 사나이다움에 대해, 로리머 자신에 대해, 크로마뇽인에 대해, 어쩌면 공룡에 대해서도. "난 남자예요. 세상에, 그래요, 화가 나는군요.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어요. 우리가 당신들에게 이 모든 것을 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었어요. 우리가 당신들의 귀중한 문명과 당신들의 지식과 편안함과 약과 꿈을 만들었어요. 전부 다. 우리가 당신들을 보호했고, 당신들과 당신네 아이들을 지키려고 기를 쓰고 일했어요. 힘든 일이었죠. 싸움이었어요. 내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었어요. 우린 거칠었지만, 그래야만 했어요. 모르겠어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겁니까?"

 

- "하지만 그 싸움은 오래전에 끝났어요. 당신들이 끝났을 때 끝났다고 봐야죠. 우린 당신들을 지구에 자유로이 풀어놓기 어렵고, 그런 감정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수용하는 시설도 없어요."

 

- 예전에 알던 여자들에 대한 격렬하고 복잡한 갈망이 그를 사로잡는다. 남자들을 그저 부적절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던 여자들. 지니... 신이시여. 그의 누이 에이미도. 불쌍한 에이미, 어렸을 때는 그에게 잘해줬는데. 로리머의 입매가 비틀린다. 👈찌질 레전드.

 

- "여러분은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죠? 여자들 세상? 자유주의자들? 아마조니아?" "우리야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부르지요." 레이디 블루의 눈은 그를 향해 반짝이다가 총알 자국으로 돌아간다. "사람들. 인간종." 그녀는 어깨를 으쓱인다. "인류."

 

 

 

 

 

05.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 The last flight of Dr.Ain ★★☆ : 아인 박사의 마지막 비행에 동승했다는, 죽어가는 여자의 정체는 무엇인가.

 

   정말 짧은 단편이었기에 마치 산문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구를 대지의 신, 가이아에 비유하는 초창기 작품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좀 더 찾아봐야겠다.

 

+)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생태학, 대중문화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등장한 1972년보다 3년 이른 1969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06. 🪷덧없는 존재감 A momentary taste of being ★★★☆ : 새로운 정착지를 발견하는 미션을 부여받은 우주인들 사이에서 의사 애런 박사는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새로운 정착지를 발견한 팀의 일원인 여동생이 증거로 그 행성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가져온 뒤부터다. 그러나 이는 드디어 십수 년 만에 미션을 달성했다는 사실과 인류에게 더 나은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고양감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생명체와 이유 모를 접촉을 시도한 후 거의 죽을 뻔한 뒤 겨우 회복 중인 타이그의 유령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이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야기를 끝까지 확인한 후 제목을 다시 보았을 때 처음과 다른 감상이 유독 마음에 강렬하게 다가오는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이 그랬다. Ⅱ장까지는 그럭저럭 읽었다. 그러다 상태 이상을 유발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외계 생명체와 우주선 안의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접촉하게 된 Ⅲ장에서는 주인공 애런 박사가 외계 생명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인력으로부터 저항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부분에선 정말 숨이 막힐 만큼 집중해서 읽었다. 재밌었던 점은 애런 박사가 전체적인 관점, 즉 하나의 정자로서는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실패작인 동시에 인력을 뛰어넘을 만큼의 자제력을 끌어안고 기록을 포기하지 않는 초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 점이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능에 새겨져 있다는 근친상간에 대한 혐오감이 왜 애런 박사에겐 존재하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는 것도 같았다. 본능이 말을 듣지 않는 타고난 돌연변이였기 때문이다. 외에 로리가 인간이 신세계를 파괴할 것이 두려워 그들을 모두(엄밀히 따지자면 일부) 수정시키기로 결심한 것이 그야말로 애런의 묘사처럼 무자비하게까지 느껴졌다. 그야말로 사랑스럽고, 미쳤고, 끔찍하고, 미치지 않은 여자다.

 

 

- 애런은 스스로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우글거리는 수십억"이라는 생각에 대한 거부 반응이었다. 아무리 수가 많다 해도 그는 꿋꿋하게 그들을 사람으로, 각각 얼굴과 이름과 독특한 개성과 의미 있는 운명을 지닌 개별적인 인간으로 생각하려 했다. (...) 사람들... 그 사람들 각각에게서 그는 배웠다. 무엇을? 크든 작든 무엇인가를, 실존을....

 

- "...위를 향하며, 짐승을 쫓아내라. 원숭이와 호랑이를 죽여라... 굉장히 오래된 시야, 오빠. 테니슨이라고." 로리는 은밀한 미소를 지었다.

 

- "밤새 깨어있지는 마라." "아, 이건 휴식인데 뭘." 로리는 기분 좋게 말했다. "진실 속으로 도피하는 거야. 돌아오는 길에는 계속 읽고 또 읽었어." 애런은 그 고독한 여행을 생각하고 움찔했다. 사랑스러운 로리, 자그마한 미친 여자.

 

- 그는 로리의 뼛속에 숨겨진 격정을 알고 있었다. 성적인 격정이 아니었다. 로리의 무자비하기까지 한 순수.... 옛말로 뭐라고 하던가, 광신적이라고 해야 할까. 선에 대한 지나치게 명쾌한 시각, 악에 대한 지나치게 확고한 증오. 그 중간에는 아무 애정도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 "(...)동생분께는 무서운 경험이었을 테지요. 그 모든 경험을 계속 되살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중국인들 사이에서, 가엾기도 해라." 외계혐오와 타인종혐오가 부딪치는 셈인가....

 

- 오랫동안 '쓰레기는 우리 생활의 중심에 있는 문제입니다. 쟁반을 깨끗이 비워주세요'라고 적혀 있던 깔끔한 표지조차도 바뀌었다. 누군가는 '쓰레기는' 위에 '아름다움은'이라고 붙여놓았다.

 

- "자네가 이 임무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내 말대로 해야 해." 애런은 훈련받은 모든 원칙에 반하여 그렇게 했다. 어째서였을까? 그는 수없이 자문했다.

 

- 초롱초롱한 눈빛은 사라지고, 트라우마적인 혐오감만 남았다. 아버지는 죽었다. 애런은 앨리스에게 고령의 영장류가 보이는 특성을 설명하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그는 포기하고 부끄러움 없이 마취약으로 앨리스의 기억을 비틀어, 취한 사람은 본인이었다고 믿게 만들었다. 임무를 위해서.

 

- 아빠가 우리를 거대 꽃양배추들로부터 지켜주실 거야.

 

- "왜 우린 우리가 지닌 짐승 같은 부분에 대해서 인간적이라는 말을 쓰는 거지, 오빠? 공격성도 인간적이라고 하고, 잔인함, 증오, 탐욕도 인간적이라고 하지. 그건 인간적이지 않은 면이야, 오빠. 정말 슬픈 일이지. 진짜 인간이 되려면 우린 그런 모든 것들을 뒤로해야 해. 왜 그러려고 노력도 못 해?" (...) "당신들은 이 신세계도 지구 같은 생지옥으로 만들 거야." 👈 '인간적'이라는 말이 환경에 따라 본능적인 행위인 동시에 본능을 뛰어넘는 고차원적인 행위 양쪽 전부로 묘사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음.

 

- "그 사람들은 괜찮아, 오빠. 내가 장담할게. 그 사람들은 아름다워." 👈쓰레기를 아름다움으로 고쳐놓은 어느 작은 행동과 오묘하게 겹쳐졌던 부분.

 

- 미래의 집. 옐로스톤 선장이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미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지 않았는가.  👈어떤 캐릭터가 자꾸 연상된다.

 

- 우주복을 단단히 닫으면서 보니 밀폐문 너머에 사람들이 더 많이 와 있었다. 이제는 비디오 화면이 모두 켜져서 풍경을 훨씬 잘 전하는데 그 얼굴들은 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애런은 혼자 쿡쿡 웃었다. 맨눈으로 보고 싶어 하다니 원숭이다운 충동이랄까.

 

- 나는 그들이 난할구라고 생각한다.

 

- 사인死因은, 내가 사인을 보고했던가? 정확한 사인은, 아, 빌어먹을, 정자 꼬리가 왜 죽겠어? 더 이상 살아갈 능력을 잃어서지.

 

- 예후는 죽음이야.

 

- 인간이 갈망하는 목표. 그걸 멈출 방법은 없어. 정말이지 희망이 없어.

 

- 이봐, 로리는 미치지 않았어. 조금도 미치지 않았어. 그 애는 우리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어....

 

 

 

07. 🦙비애곡 Slow music ★★★ : 어느 날 지구에 닿은 의 존재에 사람들은 이끌린다. 그리로 가면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닿을 수 있는 초월적 존재, 내지는 분자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주인공 자코는 강에 가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가 피치시프라는 여성을 만났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태어나 강에 가닿아 불멸의 존재가 되어 강의 일부가 되어야 함에도 그녀는 숙명을 거부한 채 발 딛을 수 있는 땅에 남아 아이들을 낳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① 죽음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동기라는 사실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두가 공유하는 일종의 진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② 책에 실린 단편들 중 가장 서정적인 이야기로 느껴졌는데, 아무래도 주인공 자코가 삶에 종속되어 있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만물의 아름다움과 본능을 통해 확인하는 정서 교류, 이끌리고 싶듯 아름답게 묘사된 강의 모습 때문이었던 것 같다. ③ 본성의 영역에 매여있다고 치부되는 여성의 실존과 이성의 영역에서 사유한다고 자부하는 남성의 부유하는 본질이 상반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 이 광경은 친밀했다. 딱 그에게, 사람에게 맞는 크기의 장관이었다. 그는 목구멍으로 애매한 소리를 냈다. 이 아름다움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났고, 그런 하찮은 아름다움에 감동했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 그는 이 집의 무분별한 다양성에 즐거워졌다.

 

-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그러더니 망설이면서 그에게 입술을 겹쳤고, 그들은 서툴게 입을 맞췄다. 소금 맛이 났다. 그는 욕망이 아니라 땅속에서 전해지는 확인 같은 깊은 울림만을 느꼈다.

 

- 피치시프는 회오리바람 같았다.

 

- "남자는 기념비를 세우고, 여자는 둥지를 짓는다." 그는 어딘가에서 따온 경구를 읊었다. "페로실이 내 자전거로 무슨 기념비를 세웠는지 모르겠는데." 그녀는 신랄하게 말했다. "넌 야만인이야." 그는 말하면서 기묘한 통증을 느꼈고, 그 통증은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되어 나왔다. "인류에겐 야만인이 좀 있어야 해.(...)"

 

- 페로실의 죽음이 갑자기 맹렬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 예전에 자신들의 구역에 침범함 다른 지역의 곰을 죽이고 그 옆에서 처음으로 짝짓기를 하는 곰 커플(?)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일평생 그 충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가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그 다큐가 생각났다. 물론, 아직도 이해는 못했다.

 

- 다시 자기혐오가 찾아왔다. 반쯤은 즐거웠던 동물적인 행동에 대해 밀려오는 메스꺼움과 후회가 뒤섞였다. 그는 밝은 달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 위로 팔을 올렸고 전부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하늘에 차갑고 고요한 별빛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잠이 들었을 때 그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지만, 내이內耳를 불길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깨어났다. 굵고 낮은 목소리들이 외치고 있었다. '말은 배고프다. 여자는 나쁘다!'

 

- "성행위를 했다는 말이야. 알아듣겠나? 아이들을 만들었다고. 그게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어. 자신들의 일부를 죽음 너머 미래로 보내는 것. 죽음은 인생의 엔진이었고, 죽음이 인간의 성행위에 연료를 공급했지. 죽음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서로를 끌어안게 하였지. 인간은 죽어가면서 승리했어... 그게 인간의 삶이었어."

 

- "나는 강을 믿지 않아... 너희는 그 안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지? 서로와, 또 다른 별들에서 온 존재들과 대화를 나눌 거라고? ...베텔기우스 별에서 온 최신 소식을 듣고." 노인은 귀에 거슬리는 웃음소리를 냈다. 자코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갈 때 하는 마지막 말이 그거예요. 모두가 그렇게 배워요. 떠돌아다니면서 진짜 다른 존재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요." "우리의 꿈에 그보다 딱 맞을 수가 있을까?" 노인은 다시 쿡쿡거렸다. "글쎄... 그게 우주적인 소시지 기계의 투입구에 붙은 미끼일 수도 있지 않을까?"

 

- 죽음은 그들과 함께 날고 그들 아래를 흘렀지만, 그는 여자의 몸으로 삶을 확고히 했고, 엄청나게 강해져 가는 미지의 감각에 붙들렸다. 

 

 

+)

   작품 대부분 희망적이기보단 절망적인 톤을 갖고 있고,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