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율리 체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24.02.15
★★★☆
"삶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는 이 둘을 잘 구분할 줄 모른다는 거야."
👇후기
이하 스포
추리 소설이 읽고 싶어 찾아보다가 추리와 물리학이 만났다는 매력적인 홍보 문구에 반해 읽은 책. 다 읽고 나니 추리(그리고 애정)는 장르적 차용이고 사실상 물리학이 중심에 놓인 관점과 철학과 애정이 충돌하는 무진장 어렵고 복잡한 소설이었다는 감상이 남았다. 추리가 장르적 수단으로써 느껴진 이유는 사건의 실상이 사실 제바스티안의 황당한 오해에서 촉발돼 다벨링이 사망하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번졌으며 오스카가 리암의 납치의 배후에 있었음을 자백하게 만드는 해결이 우연에 기댔기 때문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우연스럽게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허무함이 찾아드는 걸 막을 순 없었지만, 그 크기는 사소했다. 우연이 결정하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좀 읽기 어려운 책이었다. 물리학과 다중우주에 대한 이해가 어느정도 필요한 데다(그런 게 가능하기나 한가?) 문체가 상당히 은유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미끌미끌 글을 따라가다 보면(내용 중 형사 실프가 제바스티안의 논문을 읽으며 '반쯤밖에 꿰뚫어 볼 수 없는 문장의 미늘에 걸려 물에 젖은 바닥에 미끄러지듯 다음 문단으로 미끄러진다.'고 표현하는데 이를 빌려보았다🤭) 상황이 직관적으로 묘사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재밌는 부분이다. 마치 책이 그 내용대로 독자의 인식과 선택에 따라 다른 상황으로 인식된다면, 그 책 안에서 뻗어나가는 다중우주의 가지 또한 무수히 많다는 것 아닌가. 제바스티안의 말마따나 가능한 모든 해석이 존재하는 셈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책이 아니더라도 모든 책들은 타인에게 읽히는 동시에 무수히 많은 해석이라는 이름의 다중우주를 가지게 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두 물리학자 제바스티안과 오스카의 충돌이 특히 흥미로웠다. '가능한 일은 모두 일어난다.'라는 물리학 관점을 핑계로 사랑하지만 감당할 수 없었던 오스카와 도망치듯 찾아갔지만 안정을 찾을 수 있던 마이케, 리암 모두를 취하며 이중사고를 실현하려고 한 제바스티안과 '이중선택은 제거되어야 한다.'라는 관점으로 제바스티안에게 선택을 종용한 주제에 결국은 리암을 납치했지만, 동시에 납치하지 않은 다중우주를 모두 집어삼키고 제바스티안과 도망치려 했던 오스카. 두 사람이 만들어낸 이야기가 재밌어서, 사실은 주인공 형사 실프가 자신의 우주를 인식하고 선택하는 과정보다도 둘의 충돌이 훨씬 흥미롭게 읽혔다.
👇읽던 중
이하 스포
추리 소설이 읽고 싶어 찾아보다가 추리와 물리학이 만났다는 매력적인 홍보 문구에 반해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1장을 막 다 읽고 이런저런 핑계로 며칠 째 못 읽고 있다. 얼른 다시 읽어야지.
+)
5장까지 읽은 지금 : 내가 기대한 추리 소설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다. 가끔 의뭉스러운 묘사가 있어 고개가 기울어지지만, 2007년 출간된 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납득하며 읽는 중.
+)
형사 실프가 제바스티안이 작성했던 논문을 읽는 부분에서, '반쯤밖에 꿰뚫어 볼 수 없는 문장의 미늘에 걸려 물에 젖은 바닥에 미끄러지듯 다음 문단으로 미끄러진다.'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히 이후에 이어진 제바스티안과 오스카의 생방송 대담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에서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반쯤은 뉘앙스로 이해하고 있다.
- 아마 그라면 그것을 이렇게 표현할 것이다. 마이케의 삶에 제바스티안이 나타난 것은 양자 역학적 파동 함수의 붕괴를 의미했다고.
- 난처해하는 하객들에게 그는, 제바스티안이 신부에게 면사포 대신에 녹색등을 씌워 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비상구에는 그게 어울린다고.
- 시간의 아름다운 면은,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흘러가고 그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 재난은 떨어져 부딪힌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 낙하에 있다.
- 사람은 많은 것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지만, 자기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로부터는 달아나기 어렵다.
- "(...)비록 유물론적 원칙들에 ― 겉보기에는! ― 모순되고 그 때문에 ― 당분간은! ― 설명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 현상들이 여기저기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의심스러운 경우에 대해서는 확실한 치료법이 있죠. 그냥, 세계상에 난 구멍들 위에다가 이름표를 붙이는 겁니다.(...)"
- "(...)최소 입자들은 그것들이 관찰되는 순간 이전에는,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다수의 서로 겹쳐지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양자역학이 발견해 낸 이래로, 유니버스가 아니라 멀티버스라는 아이디어는 그저 철학적 편리를 위한 임시변통이 아니라 일관적 해석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용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별 세계 안에서 얼마나 심하게 인과 메커니즘에 지배되는지는 아무 상관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항상 새로운 우주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한은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결정을 내릴 자유를 누립니다.(...)"
- "그러면 저기 두 마리는......." 재빨리 실프는 서로 부리를 비비면서 홰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한 쌍을 가리킨다. "서로 사랑하나요?" "둘 다 수컷이에요. 저 녀석들은 뇌와 생식선을 자극하려고 애무하는 거예요."
-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은 부주의나 오류 또는 지식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의 특수성은 모든 정황을 아는데도 아무런 대안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 "내가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 오스카가 말한다.
- "가능한 일은 모두 일어납니다."
- "그것은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한 값싼 응답입니다." 오스카가 말한다. "자연과학의 단초로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에요." "왜 무용지물인가요?" 사회자가 질문하고는, 다시 일기 시작하는 관객들의 웅성거림을 한 손으로 단호하게 제지한다. "다른 우주들은 실험을 통한 검증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 "세 무아." (프랑스어로, '그건 바로 접니다.'라는 뜻.)
- 그들이 법의학 연구소에서 커다란 알루미늄 서랍 옆에 서 있었을 때, 제바스티안은 마치 자신의 희생자에게 입맞춤이라도 하려는 듯이 몸을 깊숙이 아래로 숙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물기를 머금은 채 반짝거리는 눈으로 형사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라고 그가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하실 작정이든 당신은 이 순간 제가 미치지 않도록 구했습니다.
대표이미지 첨부용

'후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0) | 2025.02.08 |
|---|---|
| 인싸를 죽여라 / 엔절라 네이글 (0) | 2025.02.04 |
| 선량한 차별주의자 / 김지혜 (0) | 2025.01.07 |
|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0) | 2025.01.02 |
|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 민이언 (0) | 2024.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