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머싯 몸의 생각이 내게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것과 별개로(여성혐오적인 태도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그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름) 이야기는 참 잘 쓴다고 생각했다. 알맹이는 별로인데 경험은 많아서 이것저것 썰 많이 풀어주는 회사 팀장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그냥 글 자체가 전반적으로 스레드 자랑글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이 책을 읽은 이유도 달과 6펜스를 읽기 전에 먼저 사뒀기 때문이었고, 얼른 읽어서 책장 정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튼 다음에 서머싯 몸의 글을 읽게 된다면 이런 감상이 많이 중화된 뒤일 듯하다. 어쩌면 그렇게 나이 더 먹고 읽어보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
아니, 근데 밑줄 그어 놓은 부분들을 적고 이 때 느꼈던 감상들을 적다 보니까 생각보다 나 이 책을 열심히 읽었나 본데?! 어쩌면 이 작가의 책이 싫다고 툴툴대면서 사실은 점순이와 같은 마음으로 알감자를 까주고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 아아아아악!!! 🙀🙀🙀🙀🙀🙀🙀 하지만 달과 6펜스보다는 좋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읽던 중
이하 스포
- 고상한 것을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해피엔딩이라 부르는 것을 비웃어야 한다고 경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 "어서 갖고 나가세요. 이보다 두 배 가격이라 해도 싼 거니까요." 👈 엘리엇 웃기는 인간임.
- 우리 나이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우리를 가차 없이,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좀처럼 알지 못한다. 👈 습관적으로 남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보통 간과하는 일이긴 함.
- 어떤 땐 이런 생각이 들어. '이런 것 저런 것을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거만하고 몹쓸 인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 "(...)하지만 선생님이 잊고 계신 점이 있어요. 결국 손해 보는 사람은 저라는 사실 말이에요. 래리는 아름다운 꿈의 구름을 좇아 마음껏 하늘을 돌아다니겠지만, 전 그 꽁무니를 쫓아다니면서 뒷수습을 하고 빠듯한 살림을 꾸리느라 바둥거려야 할 거예요. 저도 사람답게, 즐겁게 살고 싶어요." 👈이사벨이 가진 현실감각이 좋았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결혼이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하지만 불행으로 끝나는 건 과정의 산물이고 어차피 대부분 불행해지기 때문에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우린 그 후에도 밤이면 카드를 하곤 했어요. 전 그가 돈을 따려고 속임수를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자체를 재미 삼아 즐긴다는 걸 알았어요. 나를 바보로 만들면서 묘한 만족감을 느낀 거죠.(...)"
- 나의 결점 가운데 하나는, 못생긴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것에는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존나 솔직하고 못됐음. 🤣🤣🤣
- "그 사람에게 특히 매료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래리는 대답하기 전에 한참 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움푹 들어간 그의 눈은 마치 내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볼 것처럼 날카로웠다. "성스러움이요."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고급 가구들로 장식하고 벽에 아름다운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방에 울려 퍼진 그 한마디는, 마치 위층 욕조에서 흘러넘쳐 천장으로 스며 똑 떨어진 물 한 방울 같았다. 👈 묘사가 좋았음. 별개로 서구 사회가 서머싯 몸 특유의 타국에 대한 신성화에 매료된 건지 이미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서머싯 몸이 그 위에 올라탄 건지 궁금하다.
- "(...) 그러다가 갑자기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어요. 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이상하게 변했을까요?" "우리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하고 흔한 무언가가 아닐까?" "일테면요?" "글쎄, 선(善) 같은 것?" 이사벨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얘기라면 그만두세요. 속이 울렁거린다구요." "마음 깊은 곳이 저며 오는 건 아니고?" 👈 세속성과 선이 공존할 순 없나? 소유가 궁극적으로 타인 없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일까.
- 이 장황한 연설을 끝마치기 전부터 나는 이사벨이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빠져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녀가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래리가 숫총각일까요?" 👈나는 진짜 이사벨 좋더라.
- 그의 이름은 아시유 고뱅이었다. (...) 자신의 돈뿐 아니라 연인의 돈까지 생각해 주다니 얼마나 착한 여자인가. 👈 얼마나 허벌한 남자인가...
- 🔖5장 👈 책갈피 해놨길래 다시 읽어봤는데 왜 해놨는지 모르겠음. 실수였나...
- 이 덧없는 즐거움의 순간을 두 번 다시 이처럼 완벽하게 만끽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런 시기에까지 일을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겠는가. 👈이런 여유가 허용되는 부와 시대라니.
-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 "(...)순수한 아이로만 알고 있던 여자가 타락한 것을 보고 그 여자의 영혼을 구하고픈 욕구에 사로잡힌 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I can fix you
- "(...)비열한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쏴서 죽였어. 래리에겐 그런 냉혹함이 없지. 성자라고 해도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 그런 냉혹함 말이야." 👈 이건 성자라기보다 영웅이라고 생각함.
- "(...)이제 주교님의 소개장을 들고 천국이라는 왕국에 들어가게 된 셈이 아닙니까? 모든 문이 저를 향해 활짝 열리겠지요.(...)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러니 우리 상류층 사람들을 완전히 생소한 환경에 살게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건 너무 안 어울리지 않습니까?" (...) "정말입니다, 선생님." 그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천국에도 빌어먹을 평등 따윈 없을 겁니다." 👈표독스럽다는 표현이 너무 밈화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는 정말 표독스럽고 엘리엇스러운 태도였다. 평등, 평화가 세계 기조였던 시대에 나고 자란 내게는 이런 계급주의(어떤 정치·경제 이념 속에서든)적 태도가 참으로 악랄하고 과욕적으로 느껴진다. 가상인물이란 점에서는 정말 재밌지만, 실제로 널리고 널린 인간들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하면 하나씩 쓰레기봉투에 담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 예술은, 관습을 그 자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을 때 성공하는 법이다. 👈연극을 관람한 뒤 '현실적이지 못한 작품이었다'라고 평한 래리를 보며 반대의 생각을 품는 화자(몸)의 의견이었는데, 현실적이기에 우스운 꼴을 면할 수 없는 묘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에 대한 관념도 배우고 싶긴 하다. 때문에 일면 '지나치게 극적인' 작품을 보노라면 코트를 반쯤 접은 채 앉아있는 사람마냥 불편했는데 요즘엔 그 자체로도 즐기는 방법도 새로울 것이란 생각과 작은 기대감을 갖고 작품을 대하려 한다.
-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어차피 내가 살아 돌아온 건 단지 운이 좋아서였잖아요.(...)" 👈근래에 이 '운'이란 것에 인류가 너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내지는 종교적으로만 접근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수치화 할 수 없는 관념에 가깝긴 한데, 그렇다고 이게 한 사람의 인생에 끼치는 영향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내지는 '실력'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개인이 통제 가능한 것처럼 다뤄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함.
- "(...)매일 규칙적인 일과를 따르는 게 왠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을 주더군요.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토록 활동적으로 사고를 하는데도 계속 휴식을 취하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왜 태어났나 이런 정신력에 악영향 끼치는 사고로 빠져들 때 차라리 일과를 규칙적으로 만들어 그 안에 나를 때려 박아야 하는 이유.
- "(...)전능하신 창조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물질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준비가 안 됐다면 그들을 창조하지 말았어야죠." "맙소사, 래리. 자네, 오히려 중세에 안 태어난 게 천만다행인 것 같은데. 중세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화형 당했을 테니까 말이야." 👈좀 웃겼다.
- "(...)하지만 그런 나쁜 버릇은 주로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유전적인 요소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오는 거잖아요. 그들의 범죄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고, 그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하느님이라면 아무리 질이 나쁘다고 해도 그런 사람들에게 영원한 저주를 내리진 않을 겁니다.(...)" 👈1944년에 하던 이 얘기 2026년에도 통함.
- "(...)'아닙니다. 당신은 하느님은 안 믿지만 매우 종교적인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아내실 겁니다. 당신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이곳이 될지 다른 곳이 될지는 오직 하느님만이 아시겠지요.'" 👈 이 부분 전형적인 종교인들의 만물종교설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는데 읽다보니 맞말이었음.
- 나를 버리는 자들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니, / 그들이 나를 떠나 날아갈 때, 나는 그 날개이니라. / 나는 의심하는 자요, 의심 그 자체이며 / 브라만이 노래하는 찬미가이니라. 👈 브라만교에 대한 에머슨의 시라고만 언급되어 있는데, 찾아보니 랄프 왈도 에머슨이라는 작가의 브라마Brahma라는 시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차라리 어떤 절대자가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함.
- "그저 고독과 새벽의 신비스런 분위기 그리고 강철판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가 자네의 심리 상태와 합쳐져서 나타난 일종의 최면 상태는 아니었을까? 그것을 그 이상의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라도 있나?" 👈 열받게도 화자에게 공감할 때가 많았는데, 어쩌면 서머싯 몸의 글이 내 취향이 아닌 것은 동족혐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무서운 일이다.
- "내가 조언 하나 해도 되겠나, 래리? 원래는 조언 같은 거 잘 안 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저도 원래 조언 같은 거 잘 안 받는 사람입니다." 👈친해진 거 느껴지더라.
- 식사는 이미 끝마친 상태였다. 나는 웨이터에게 계산서를 갖다 달라고 하고는, 계산서가 오자 그것을 래리에게 건넸다. "어차피 그 돈을 다 포기할 거면 내 아침 정도는 살 수 있겠지?" 👈이정도 말빨은 돼야 역사에 남을 작가가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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