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나영웅
- 출판
- 지음미디어
- 출판일
- 2024.07.26
★★★
"계급은 소득에 비례하지 소비에 비례하지 않는다."
👇후기
언제나 많은 것이 생각 이상으로 구조의 문제다. 나의 정보 수집력이 충분하고, 나의 판단력이 충분히 합리적이며, 나의 자제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책임감과 착각 사이에 나는 항상 존재한다. 그 사이에서 최대한의 균형을 잡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일은 소비에 있어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는 생각을 했다.
이하 스포
- 우리는 경제 자본이나 학력 자본이 높은 사람에게 상류층으로서의 품격이나 여유로운 이미지를 기대하지만 경제 자본은 경제 자본일 뿐이다. 아비투스로 체화된 삶의 품격은 경제 자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문화 자본과 사회 자본이 경제적 가치를 띄면서 경제 자본은 이들 자본을 끌어들이고 관리하는 핵심 자본이 된다.
- 돈으로 취향을 살 수는 없다. 문화 자본은 개인의 아비투스로 억지로 꾸미지 않아도 은은하게 깃든 취향으로 내재화된다. 단순히 구매하고 소유하는 행위로는 취향을 내 것으로 온전히 소화할 수 없다.
- 문화 자본을 축적한 부르주아의 자녀들은 부모가 소유한 경제 자본의 상속자로서, 혹은 높은 보수를 제공받는 위치에 맞는 합법적 자격을 보유한 자로서 정당성을 갖는다. 자본의 축적은 더 이상 노동력의 착취라는 순진한 방법으로만 수행되지 않는다. 부르디외는 자본 축적의 좀 더 정교하고 은폐된 방식을 드러낸다.
- 경제 자본은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의 문화 자본으로 전환되어 승계되었고 굳어진 계층 사회를 만들었다. 이는 자유 의지만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내포한다.
- 이와 반대로 부상하는 소비문화도 있다. 바로 브랜드가 지향하는 의미를 소비하는 문화다. 이러한 '의미 소비'는 상대적으로 경제 자본은 적지만 잘 배운 젊은 노동자 계층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쌓아 놓은 부가 적기 때문에 상위 계급의 명품을 소비할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구매할 수 있는 선에서 추앙할 수 있는 메시지를 가진 브랜드를 따르기 시작한다. 경제적 계층이 아니라 문화적 계층만이 그들이 스스로 특별해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 브랜드는 결국 상징을 통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공한다. 그리고 소비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위치와 철학을 확인한다. 문제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층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자신의 브랜드를 기준으로 높고 낮음을 만들어 다른 브랜드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이다. 21세기 가문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에서 멈추지 않고 21세기 계층화로 얼룩지고 있다.
-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나의 취향이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취향의 범위에 갇혀 스스로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 이 현상을 부르디외는 계급의 은근히 드러나는 지배, 피지배 계층의 자발적은 복종을 뜻하는 '상징 폭력'이라고 부른다.
-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행위에 '내가 당신에게 이만큼의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습니다'라는 메시지가 포함될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관계 자본을 더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다.
- 부르디외는 기자나 PD 등 텔레비전 산업에 속한 개개인을 욕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구조 속에 갇힌 신의 인형으로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구조를 파고들어야 한다. 구조를 이해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텔레비전 즉 모든 미디어에는 의도가 있다.
- 노력에 집중하게끔 만드는 환경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최소한의 환경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개인은 노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각기 다른 결핍 속에 최선의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지금 서있는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더 존중하고 사랑해 줄 필요가 있다.
- 상위로 가는 길에서 탈락했다고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빈민, 소수자, 흙수저 등으로 규정한다면 손발이 잘린 사람처럼 무기력에 빠지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언어를 잃게 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지배를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가 되어버린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을 규정짓는 계층에서 벗어나 내가 몸담은 사회를 사유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우리는 설명할 수 없음을 비정상이라고 치부하고 두려워한다. 그럴 때 우리는 수잔과 같은 선택을 하곤 한다. 더 이상 설명할 힘도 되돌이킬 기회도 남지 않아 상대방이 이해하는 수준으로 결말지어 버리는 것이다.
- 이제는 편의점보다 많아진 카페마다 여전히 홀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19호실을 찾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언제든 크게 소진되는 날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방문할 수 있는 나만의 회복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 저항은 반대편에 힘을 싣는 것이다. 힘을 싣지 않으면 반대의 힘에 나의 취향이 눌리고 만다. 취향은 끊임없이 밀고 당기는 게임이다. 부르디외는 참여하기를 권한다. 힘을 싣기를 권한다. 당신을 위해, 당신의 취향을 위해,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 대중이 접하는 언론 기사에는 진실보다 발행자의 목적만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진실은 언제나 화려한 단어와 상징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진실을 보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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