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에 앞서 글감 기능이 사라져 충격을 받고 잠시 기절했었다는 소식. 🥴🥴

★★★☆
"맞다. 지금 여성들이, 페미니즘 운동이 처한 상황은 분명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도 되묻고 싶다.
상황이 언제는 쉬웠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이자 오타쿠이자 서브컬처의 향유자로 최근의 페미니즘 백래시 동향을 함께 목격하고 휩쓸려온 사람들에겐 필독서가 아닐까 싶다. 이북으로 읽었지만, 종북을 사서 읽었다면 아마 온 페이지에 형광펜을 칠하느라 펜을 두 개는 더 썼을 것 같다. 어떻게 인터넷을 중심으로 페미사냥이 이뤄졌는지, 어떻게 소수의 오타쿠들이 아닌 다수의 남성들에게까지 이 사냥이 놀이처럼 퍼지고 기업은 어떻게 이에 동조했는지, 그들이 어떻게 세워진 사상누각 위에서 어떻게 군림하고 있는지에 대한 흐름이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인싸를 죽여라」 이후 읽는 내내 두통이 느껴진 책은 간만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심정적으로 너무 지치기도 했지만, 눈과 귀와 입을 막을 만한 대단한 이유가 되진 못한다.
개인적으로는 근래 들어 신자유주의적 소비자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을 엄청 크게 느끼고 있는 한편, 이를 타개할 만한 방법을 찾진 못한 채로 방황하고 있는 상황인데(단지 페미니즘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이야기를 멈추지 말자'는 작가의 말이 새로운 실천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귀한 씨앗으로 다가온 것을 느꼈다.
👇읽던 중
이하 스포
- 자본주의 체제는 집단적 색출과 공격의 대상으로 부정적인 여성상을 만들고, 가부장적 지배 구조에 반하는 존재와 실천을 마녀로 지목한 뒤 공개 처형한다. 페데리치가 분석한 마녀사냥의 양상과 그 서술 방식은 지금의 페미사냥을 설명하는 데에 그대로 써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
- 신자유주의 통치성의 젠더 정치라는 측면에서 (...) 여성 소비자라는 단일 정체성 아래 결집하는 일, 소비자의 구매력에 기반한 규모의 정치를 하는 일은 너무도 쉽게 체제에 복무하게 되거나, 혹은 알지 못한 채 그 체제에 이용당하기 마련이다.
- 앞서 페미사냥이 일부 남성 집단의 일탈로 분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렇게도 말할 것이다. 페미사냥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을 구성한 특수한 장으로 남성향 서브컬처와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를 봐야 한다고. 이 두 주장은 언뜻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페미사냥은 남성 주도성이 두드러지는 좁고 주변적인 문화와 시장 구조 안에서 발생한 후, 사회 전반의 남성중심적 구조와 상호작용하여 영향력을 확산해 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 이들에게는 성우가 시민이자 노동자라는 점보다 해당 성우가 자신이 구입한 캐릭터의 구성 요소인 목소리를 담당했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 우선 그들이 말하는 페미들이 서브컬처 문화의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측면들을 망가트려 온 것은 맞고, 계속 망가트릴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침입했다는 생각은 틀렸다. 여성 그리고 페미니스트 소비자는 원래부터 서브컬처 문화 안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어릴때부터 레슬링, 게임, 가볍게 발 담근 밀리터리나 최근엔 농구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반가웠던 대목. 남성 중심의 팬 커뮤니티에서 있으면 그들이 여성들을 희롱하고 조롱하는 다양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 과한 점이야말로 오타쿠의 미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타쿠의 열정은 페미사냥을 일으킬 때뿐 아니라 이에 맞설 때도 적용된다. 👈작가님이 오타쿠라 그런지 벅찬 연출을 기가 맥히게 잘 써주셔서 두통에 시달리는 내내 한 번씩 의지로 추동되는 주인공처럼 힘이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 남성 소비자의 항의는 소비자 대 기업의 구도가 아닌, 남성으로 표상되는 게임계 대 외부자 페미 여성의 대립 구도로 조직되었다.
- 페미사냥에 나선 소비자들은 자신을 서브컬처 문화 공동체의 일원으로 여기며, 돈을 낸 사람으로서 성원권과 창작자에 대한 우월적 지위를 구매·갱신했다고 여겼다.
- 여성학자 민가영은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피해' 관념을 전략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을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보수 정부에서 성범죄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하고 엄벌주의를 표방하는 양상을 사례로 들며, 젠더 폭력 문제에서 개별 피해 사실과 구제만이 강조될 때 성차별이라는 피해의 구조적 원인이 논의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다. 권력 구조의 맥락이 삭제된 '피해'는 단지 관심과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자원이 된다.
- 기업의 부당 해고는 "매출 폭락"을 방어한 행위, 즉 이윤을 추구한 합리적인 행위로 설명된다. 그러면서 이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 비난한다. 페미니스트를 무지한 존재로 깎아내리기 위해 갑작스럽게 동원되는 거대한 체제들.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이 세 가지 체제를 절대적인 원리로 맹신하는 태도에 이미 극우적인 정치 '사상'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 묻고 싶다. 사람 밥줄을 끊어 놓고 그걸로 비판 당하고 기분이 좀 상한 것이 뭐가 그렇게 아픈 피해냐고.
- 남성 소비자들의 놀이가 된 인증 행위는 30만원 정도를 썼다는 작성자도, 심지어 한 푼도 쓰지 않은 소비자조차도 오직 남성이라는 동질감만으로 2000만 원을 쓴 소비자인 양 굴 수 있게 해 주었다. 훨씬 중요한 사실은 기업이 이런 실체 없는 주장 앞에 알아서 엎드렸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이 주 소비자라는 신화가 기업에도 통용되었기 때문이리라. 혹은 그 신화를 따르는 의사결정자의 등을 살짝 밀어줄 구실이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 (...) 페미사냥 요구를 수용한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의 근거는 "갓겜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거나 "갓겜이라는 칭찬"이 자자했다는 기억 정도다. 우리는 페미사냥 소비자가 구성한 '승리의 역사'가 그들의 준거 집단에서 관측 및 수집된 부분적 사실에 기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남성 소비자 집단에서 페미사냥을 지지한 기억만이 반복적으로 호출된 결과일 따름이다.
-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혐오는 새로운 매카시즘이다.
- "하청 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하여 원청업체에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사의 호들갑?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문제를 제기한 이상 상품을 만든 제조사는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춰 수정을 하는 게 당연합니다.(이 일로 한시도 쉬지 못하고 근무 중인 게임사 직원분들... 고생 많으시단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그게 시장경제의 기본 질서입니다." - 현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 블로그 「이번 '뿌리' 사태는 진영과 사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2023년 11월 29일.
- 🔖진짜 재미를 알고 있는 우리들
- 페미사냥이 빼앗는 것은 페미니스트의 구체적인 이야기다. '페미'라는 낙인으로 우리는 자기 세계와 고유한 즐거움과 삶의 면면들을 빼앗기거나 스스로 침묵 속에 가뒀다. 사냥에 다시 저항하려면 굴하지 않고 다시 말하는 수밖에 없다.
- 가시성의 경제란 페미니즘이 '보이게 되는 것'만을 운동의 목적으로 삼는 경향을 꼬집으며 여성학자 사라 바넷와이저가 내세운 개념이다. 한국에서의 가시성의 경제를 연구한 여성학자 홍보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보이지 않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가시화 정치는 대상을 선택적으로 비춰 온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다. 다만 보이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 대중성과 인기를 추구하는 가시성의 경제는 기존 권력 구조에 영합할 수밖에 없다.
- 중요한 건 이것이 성차별 구조의 문제라고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다. 페미사냥은 시장에서 페미니스트를, 나아가 모든 여성을 상시적 감시와 폭력으로 길들이려 한다. 성차별로 이득을 보는 혹은 그러리라 믿는 모든 주체가 여기에 공조하고 있다. 페미니스트는 우리가 이런 속셈을 꿰고 있음을, 가만히 당하고 있지 않을 것임을 요란하게 폭로해야 한다. 사냥꾼들의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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